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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껄떠벌

제목 아직 없음 - 철우무림哲雨武林

2020.01.27 04:03

조회 수:11

- 차 례 -

序, 추방追放
제 일 장.  강호초행江湖初行
어디로 가는가?

삼십 성상을 이렇게 걷고만 있다.
무엇 때문에.

하…


序, 추방追放

“야, 이놈아!  내가 너를 데려다 키운지 삼십년이다.  네놈도 양심이 있으면 한번 생각해 보거라!  대체 넌 뭐하는 놈이냐?  왜 사는 것이냐?”
“…”
“아이고 답답해!  뭐라고 대답이라도 좀 하면 입이 부르트기라도 한다더냐?
 에잇!”
“…”
“됐다. 이것이나 받거라!”
철그렁.
오현문五炫門 문주 강진혁康鎭赫은 보기에 제법 묵직한 면낭棉囊을 탁자에 던져 놓으며, 마주 앉은 둘째 제자 소철우蘇哲雨에게 고개짓으로 챙기라는 뜻을 비쳤다.
“사부님, 이것이…?”
“이제 그만 내 곁을 떠나거라.”
“예?  아니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요?”
“갑자기?”
강문주는 한껏 치솟은 부아를 스스로 삭이느라 큰 숨을 서너 번 들이내쉬었다.  어차피 떠나보내기로 굳힌 마음에, 문을 나가면 고생할 것이 뻔한 제자가, 그래도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네가 내 밑에서 공부를 한지가 어언 이십팔년이다.  지금 문을 나서더라도 네 몸 하나는 충분히 지켜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네 앞 길은 스스로 헤쳐나가도록 하거라.  너도 알다시피 네 사형은 물론 나이 어린 두 사제들도 훌륭히 제 몫을 하고 있지 않느냐.”
“하지만 사부…”
“그만!  말만 길어질 뿐이다.  면낭에 든 은자면 혼자서 반 년은 충분히 지낼 수 있을 것이니, 그 안에 네가 마침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자리를 잡도록 하거라.  나갈 때 다른 이들껜 굳이 인사를 챙기지 않아도 된다.  물러가거라.”

문주의 집무실을 나오니 안채에서 오현문의 안주인인 강康부인이 제법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나오고 있었다.
“철우야, 문주님을 너무 원망하지 말거라.  저 양반 생각엔 더 늦기 전에 널…”
“알고 있습니다.  늘 걱정만 끼치고, 죄송합니다.”
“네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또 네가 어디 남이더냐.  내 품에서 만 벌써 삼십년인데.  모쪼록 심기일전하여 자리를 잡고, 다음에 올 때에는 손주라도 하나 안겨주려무나.”
“예.”

자기 방으로 돌아온 철우는 방을 휘이 둘러보았다.  삼십년을 묵었다고는 하나 막상 떠나려니 딱히 챙길 것도 없다.  사모가 건네 준 보따리를 풀러 보니 평소에 입던 옷 세 벌과 새로 마련한 듯한 옷 한 벌, 그리고 여린 회색의 무복이 한 벌 들어있었고, 며칠은 먹을 수 있는 양의 떡과 건육포, 그리고 깨끗한 면낭에 은 열냥이 들어있다.
몇 가지 짐을 챙겨 등에 지고 오른쪽 허리에는 수련할 때 쓰는 검을 찼다.  아직까지 오현문을 멀리 벗어난 적이 없는 철우는, 십여 년 전부터 목검을 버리고 진검으로 수련을 했는데, 그 동안 수 십 자루의 검이 바뀌었다가 삼년 전부터는 지금의 검을 사용하고 있다.  그저 대장간에서 흔히 만들어 내는, 검신 길이 두자 반 정도의 청강검으로 검집도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둘째 공자님!  어디 가실만한 곳은 있으신지요?”
“아, 총관어르신.  제가 어디…”
“그럼 우선 친인들께 한 번 들르시지요, 첫 강호행이니 유람한다 생각하시고 한 반 년 지내시면 문주님 생각도 바뀌실 겁니다.”
“예, 그럼 이만…”

오현문 정문을 나서며 두 명의 위사들에게서 받은 인사를 등 뒤에 두고, 하늘을 본다.
친인이라.
한 분의 사백과 두 분의 사숙, 그리고 사형제 셋.
아무리 생각없이 지금까지 살아왔다고는 해도, 친소親疎 정도를 떠나 아는 사람이 너무 적다.
하긴 사부가 그를 내쫓는 이유도 바로 그러하니, ‘아무 생각이 없이’ 사는 것.
사부가 가르쳐 주는 공부와 사모가 챙겨주는 일용日用의 것 말고는…

“가 보자.”


제 일 장.  강호초행江湖初行

絶句(절구)                    杜甫(두보)

江碧鳥逾白(강벽조유백)       강물 파래 새 더욱 희고
山靑花欲然(산청화욕연)        산 푸르고 꽃은 타는 듯하다
今春看又過(금춘간우과)       이 봄도 목전에 또 지나간다만
何日是歸年(하일시귀년)        어느 날이 돌아갈 때인가


초봄은 지났고 한낮이면 제법 햇살이 따갑게 느껴졌다.
삼십년을 의지하고 살었던 곳을 아무런 준비 없이 나섰어도 철우에겐 별다른 느낌이나 감상이 없다.  하물며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그저 발길 닿는대로 걸을 뿐.

‘이렇게 걷다 사제나 만났으면 좋겠군'
철우의 바로 아래 사제인 류화린劉華麟은 철우보다 두 살 어린 서른셋의 나이로, 이미 오래 전부터 청라일지靑羅一指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청라일지!
오현문의 권장지각검拳掌指脚劍 다섯 절기 중 지법指法을 극성으로 익혀 상대의 가슴에 피할 수 없는 한 수를 날림으로써 이름을 빛냈다.
다음 대의 오현문주로 키우기 위해 강문주가 무공 교두로 한 힘을 보태던 화린을 5년 전부터 세상에 내 보냈다.
‘사형이 불쌍하다는 눈빛을 보내는 것보다 화린이의 잔소리가 오히려 편했는데.’

벌써 사흘 째 걷고 있다.
‘어디지?’
사람 많은 곳을 피해 걷다 보니 관도에서 멀어진 것은 물론이고, 이제는 산으로 접어들어 이대로 가다가는 산속에 갇히지나 않을까 싶다.
‘오백리는 벗어났을 거야.  안되겠다, 먹을 것도 떨어져 가고, 마을을 찾아봐야지.’

그렇게 산으로 난 소로를 따라 하루 반나절을 더 나아갔을 때 제법 너른 분지에 형성된 마을이 나타났다.
전형적인 화전민 부락으로 약 삼십 여 호의 집들이 모여 있고, 그 앞으로 농작물 파릇거리는 밭이 펼쳐져 있다.  이런 규모라면 생활에 그다지 어려움이 없으리라.
개 짖는 소리를 따라 마을로 들어서니 재잘대며 뛰어놀던 아이들이 먼 발치께로 다가와 낯 선 이를 기웃거렸다.
“애들아!  이 동네에 객점客店이 있느냐?”
“우와~”
갑자기 동네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무엇이 우스운지 깔깔거리며 도망을 갔다.
조금 더 들어가니 맞은 편에서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어서오시구려!  산길이 제법 멀고 힘든데 어찌 이런 촌으로 오셨는지 모르겠구려.  이곳은 드나드는 이가 거의 없어 주루나 객잔이 없다오.  아무튼 오랜만에 오신 손님이신데, 날 따라오시구려.”
“아, 예.  무창에 살고 있는 소철우라고 합니다.  우연히 지나다 들렀습니다.”
철우가 공수拱手로 인사를 하자 노인은 가볍게 인사를 받으며 뒤 돌아 걷기시작했다.

“일부러 이런 산촌에 오시지는 않으셨을 게고, 어디 가시는데 길을 잃으신 게요?  무창에서 이 쪽으로 오셨으면 하남으로 가시려고 한 듯 한데, 방향은 맞소오만 보시다시피 산이 가로 막고 있어, 관도나 편안한 길은 무창에서 서쪽으로 가야하는데…”
‘하남!?’
글쎄다,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며칠을 걸으면서도.
“마을을 지나 더 깊은 산속으로 이런 소롯길이 이어져 사나흘 만 더 가면 하남 땅을 밟을 수는 있으나, 가는 도중에 객점은커녕 마을도 없고, 게다가 까탈스런 녹림도까지 자주 만나니, 호광에서 하남을 가는 이들은 조금 돌더라도 큰길을 이용하고 있다오.”
“그렇군요.”

재잘재잘.
뒤를 돌아보니 어느 새 동네 아이들 십여명이 따라오며 자기들끼리 신이나서 떠들고 있었다.
“와!  아저씨!  이 칼 진짜 칼이죠?”
“우리 나무칼하고는 다르지?”
“오빠!  우리칼처럼 나무로 됐잖아?”
“야 이 바보야, 저건 칼집이고 그 안에 진짜 칼이 있는 거야.”
‘내가 검을 차고 있었는가?’
무의식 중에 오른 허리어림으로 손을 뻗치다 슬몃 놀랐다.
사부는 철우가 가끔씩 문 밖으로 나갈 때면 어김없이 착검한 것을 확인하곤 했다.
“도대체 네가 배운 것이 무엇이더냐?”

“저어 어르신!  혹시 마을에서 며칠 묵을 수 있을까요?”
“아, 바로 떠나시려던 게 아니었소?  내가 년 전부터 혼자 지내니 내 집에 계시면 되오만, 먹거리나는 시원찮을 게요.”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마을 사람들이 죄다 밭으로 일을 나가야 해서 그러잖아도 적적하던 터라오.”
이래서였다, 사부의 내침이.  어디로, 또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 비로서 생각을 해야 했다.  
사부가 가리키는 곳도 없었고, 여직 사모가 챙겨줬던 것도 이제는 스스로가 해결을 해야 했다.

이 마을은 제법 오래된 마을로 담潭씨 집성촌이었고, 노인은 마을의 이일저일을 주관하는 촌장으로, 자식들은 대처로 내보냈고 삼년 전에 상처하여 혼자 지내고 있다.
노인의 이름은 담성걸潭聖杰, 예순넷.
“얼마나 계실지 모르오만, 편케 지내시구려.”
“예 어르신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씀 놓으십시오, 아드님 또래이옵니다.”
“허허허, 그러세나.”

날이 저물자 일 나갔던 이들이 돌아와선지 마을에 활기가 돌았다.
“자, 변변치 않지만 한 술 뜨게.”
담노인의 말과는 다르게 여러가지 야채와 돼지고기도 제법 눈에 띄는 볶음밥炒飯에, 술과 함께 두세 가지 안주까지 챙겨 탁자에 올려놓았다.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술은 좀 하시는가?”
“예.  그런데 아직 술맛은 모르고 있습니다.”
“술맛이야 호사가들이 느끼는 것이고 우리네야 몇 잔 술에 취하면 그 뿐인게야.”

그렇게 몇 순배巡杯의 술에 얼굴이 슬쩍 달아오를 즈음에 담노인이 물었다.
“그래 어디를 가는 길이었길래 우리 마을로 오게 됐는가?”
“그게…….”
철우는 안주를 집던 젓가락을 놓고는 노인을 쳐다 보았다.
맑고 잔잔하게 잠겨 있는 노인의 눈은 묘하게도 사람을 감싸 안는 힘이 있었다.
사부내외의 눈빛과 닮았으면서도 뭔지 모르게 끌어당기는.

“실은 사부님께서 공부가 부족하다고 여기셨는지….”
“호오, 그래 쫓겨났구먼!”
눈가와 입꼬리에 잔웃음까지 띄우며 말했다.
“예.”
“사문은 어떻게 되시나?”
“무창의 오현문입니다.”
“그렇군.  내가 알기로 제법 연륜이 있는 곳일텐데?”
“예.  제가 삼 대 제자로 사조께서 문을 세우신지 사십 성상이 흘렀습니다.”
“그래 무슨 공부를 했는가?”

오현문은 철우의 사조인 만리신협萬里神俠 등소림鄧小琳이 창건한 문파로 등소림은 소림의 속가제자였다.
소림무술의 특징인 권장지각검拳掌指脚劍을 충실히 익힌 뒤, 강호에 출도하여 오랜 기간 협행을 한 후 무창에 오현문을 창건하여 자리를 잡고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오현문은 등소림이 강호행을 하면서 실전에 적합하게 재정립한 소림무술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무창은 물론 하남 등의 표국이나 여러 방파에 보내 활약하게 하고 있다.
규모도 제법 되어 문주와 직계 제자, 총관과 무공교두, 그리고 십 대부터 삼십 대까지의 수련인, 그 밖의 인원까지 총 백팔십 여의 식솔이 있다.

짧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글쎄, 뭘 배웠나?’
철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부님 속만 썩였습니다.  딱히 내세눌만한 것이 없습니다.”
다시 이는 생각 하나.
‘왜 배웠나?”

담노인은 새삼 철우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저 평범한 모습이다.  이제 청년 시기를 갓 지난 듯 하고, 특별히 도드라지거나 모난 곳이 없는 얼굴, 무술을 익혔다고 해도 조금 키가 큰 것 말고는 몸집도 그렇다.
한 가지 노인의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니, 철우의 눈 빛이었다.
고요한 바다!
젊었을 적 딱 한 번, 절강성浙江省으로 일을 보러 갔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던 수평선 아득했던 바다.
담노인은 빤히 마주 보는 철우가 어색했던지 크험, 헛기침을 하고는 철우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그래, 앞으로의 행로는 어찌 되는가?”
이번에는 철우가 담노인을 한참 쳐다봤다.
이게 대체 얼마만에 생각을 해 보는 것인가!
‘이 노인은 알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르신!  사부님께선 세상 살아내기엔 제가 너무 미욱타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 출문을 명하신 것이 그 때문이라는 사모님 말씀도 계셨구요.”
“흐음….”
“처음 뵙는데 이런 말씀 올리기가 그렇습니다만, 어르신께서 가르침을 좀….”

철우는 앞에 있는 담노인에게서 사부 못지 않은 기운을 느꼈고 오현문에서 대하던 사람들과는 다르게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다.
지난 십삼 년간 철우는 혼자만의 성에 스스로를 가두며 지냈다.
사부의 가르침에 따르고 사모의 보살핌을 받는 것 외는 어떠한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
벌써 나이가 서른셋을 넘겼는데도 문에서의 역활이 단 한가지도 없었다.
스무살까지는 갓 입문한 십대 또래들의 무공 교두 노릇도 했고 총관의 일도 제법 거들었었다.
그 해 겨울, 그 일이 있기까지는.

마당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고는 목소리가 들렸다.
“숙부님!  진이옵니다.  화아花兒가 ‘할아버지 집에 손님이 오셨다’고 해서 들렀습니다.”
“마침 잘 왔네.  어서 들어오게.”
문이 열리고 키가 육척은 되어 보이는 삼십 대 중반의 장한이 인사를 하며 들어섰다.
“아직 저녁 전이지?”
“아닙니다.  돌아가서 식구들과 먹겠습니다.  숙부님이 담그신 술 향기가 진동을 하는군요, 허허허!”
“자네도 참.  내 잔을 가져올테니 인사들이나 나누고 있게.”

“처음 뵙겠습니다, 담가촌潭家村의 담서진潭瑞璡이올시다.”
“무창에서 온 소철우입니다.”
“반갑습니다.  근 삼 년만에 외지 손님이 오셔선지 온 마을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길래….”
그 때 담노인이 술잔과 젓가락을 들고 들어오며 말했다.
“궁금할 게 뭬 있누!  며칠 묵으실 게니 화아 어멈에게 먹거리나 좀 챙기라고 이르게.”
“예.”

벌써 이틀이 지났다.
낮엔 마을 어른들 대부분이 밭일이나 집안일을 하고,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은 담노인 집에서 글을 배우거나 분지를 이뤄주고 있는 산에서 놀이에 푸욱 빠졌다가 돌아왔다.
“저어 어르신!  제가 뭐 도울 일이 없을까요?”
“일?”
“….”
“할 줄 아는 게 뭔가?”
“….”
“검을 지니고 있더구먼 공부는 어느 정도 했는가?”
“사부님께서 한 몸 지킬 정도는 된다 하셨습니다.”
“호오~  제법 실하게 수련을 한 게로군.  그럼 부탁 좀 함세!”

담가촌이 호광성 홍안현과 하남성 신현의 경계에 있는 산자락의 한 분지에 자리를 한 것이 대략 백 년 전, 담노인의 할아버지가 일가를 이끌고 들어오면서부터 였다.
원명元明 교체기의 혼란을 틈타 관리들의 수탈은 극심했고 도처에는 도적들이 들끓었다.  이를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었던 것이다.
그 후 화전을 일궈 자급자족으로 생활을 하며, 되도록이면 외부와 접촉을 자제하느라 길도 넓히지 않고 백년 세월을 지내고 있었다.
객이라야 이삼년에 한 번씩 길잃은 사람들이 거쳐갔고, 타지로 출가한 사람들과 혼인할 나이가 되어 신부감을 찾으러 나서는 젊은이들이 전부였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큰 걱정없이 지냈는데, 나라가 다시금 어지러워지기 시작을 한 듯하더구먼.  그래 년 전부터 서진이를 앞세워 동네 청년들을 단련을 시키고 있는데, 우리가 뭐 알고 있는 게 있어야 말이지.”
담서진은 대처에 나가 구해온 무술 교본을 토대로 마을에 있는 청장년들과 함께 수련을 하고 있었으나 한계가 있었다.
마을의 어느 누구도 몸으로 무술을 익혀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네가 한번 좀 봐줄 수 있겠는가?”

다음 날, 담노인과 저녁상을 물리고 난 유시酉時 말末께에 담서진이 청년 셋과 함께 왔다.
산속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산을 타고 사냥과 나무를 하며 지냈고, 화전을 일구며 힘을 쓰느라 붙은 근육들이 제법인 청년들이었다.
수인사가 오간 후 철우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르신의 말씀을 받기는 하옵는데, 소생의 자질이 미천하여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고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제가 산골무지랭이올시다만 무창에 있는 오현문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균현의 무당武當에 못지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
“과찬이십니다.  어찌 대무당과 견줄 수 있겠습니까.”
이때 한 청년이 나섰다.
“할아버지께서 이르시기에 따르기는 합니다만, 솔직히 좀….”
“효찬曉燦아!”
담서진과 같이 온 셋 중 십칠팔 세 가량 되어보이는, 눈빛이 맑고 체격이 다부진 청년이었다.
아마 마을에서 가장 실력이 앞서가는데, 따로 누구에게 그것을 검증받으라는 것이 내키지 않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함께 밖으로 나가실까요?”
“예!?”
네 사람이 무슨소린가 의아해 할 때,
“허허!  내가 준비를 해 줌세!”
방안에서 듣고 있던 담노인이 나오며 말했다.
곧 이어 마당 두 곳에 불이 밝혀지고 모두들 밖으로 나와 자리를 했다.

“효찬이라고 했나?  지금까지 익힌 것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그제서야 철우의 뜻을 알게 된 사람들이 한숨을 쉴 때, 담효찬은 당연하다는 얼굴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자, 지금까지 익힌 바대로 나를 공격해 보게.”
“알겠습니다.”

담효진은 서너 걸음 앞으로 나서며 뒤돌아 서서 담노인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철우와 마주 보고 섰다.
“주로 무엇을 익혔는가?”
“권각술입니다.”
“권과 각 중 무엇이 더 자신있는가?”
“권입니다.”
“그럼 우리 손 겨루기로 시작해 보세.”
“그럼….”

철우와 담효찬은 공수로 예를 보인 후 반半 장丈 거리로 다가섰다.
철우는 별다른 동작 없이 두 팔을 내린체 섰고, 담효찬은 양다리를 넓게 벌린 후 몸을 낮추면서 마보를 취함과 동시에 두 팔을 휘둘러 긴장을 푼 다음, 왼쪽 다리를 앞으로 내밀어 웅크리고 앉으면서 양팔을 높이 올려 조수爪手를 취했다.
‘아, 이들이 소림권을 익히고 있었군.”
아마 담서진이 구해 온 교본이 ‘소림오형권’일 것이다.

“핫!”
우렁찬 기합성과 함께 담효찬의 첫 수가 바람처럼 철우를 덮쳤다.
펼쳐졌던 오른손의 조수를 주먹으로 말아 감아쥐면서 철우의 목 부근을 무찔러 왔다.
바람소리라도 날 것처럼 빠르고 강맹했지만 거칠었다.
탁!
철우의 왼 팔이 담효찬의 공세를 막으며 부드럽게 한 걸음을 내딛자, 담효진은 뒤로 물러서면서도 왼 팔을 다시 내리쳤다.
탁!
앞으로 나서며 공격을 가해도 부족할텐데 뒤로 밀려나면서 내지르는 연환 공격은 그다지 힘이 들어있지 못 했다.
가쁘게 숨을 한번 들이내쉬며 담효진의 공격은 이어졌다.
두 사람 사이의 일방적인 공격과 수비는 반의 반 각정도 이어졌는데, 담효찬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헐떡거리다가는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헉!  헉!”

“쯧쯧, 어찌 일 각을 못 버티누!”
“하하, 어르신!  수 십 년 동안 수련을 쌓은 이들도 반각을 계속해서 공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짬짬히 익힌 정도로는 상당한 실력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담형께서….”
“아이고, 나는 효찬이 반도 못 미치는데….”
담서진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소매를 접으면서 걸어 나왔다.

두 사람이 예를 갖추자마자, 이번에는 철우가 먼저 담서진의 얼굴을 향해 왼 팔로 일 수를 가하자, ‘어엇!’하며 양 팔을 겹쳐 철우의 공격을 막았으나, 철우의 오른 팔은 이미 담서진의 왼쪽 옆구리를 파고 들고 있었다.
“읏차!”
담서진은 허리를 틀어 철우의 공격을 피하고는, 틀어지는 허리의 힘으로 몸을 한바퀴 돌리면서 철우를 짓쳐 나갔다.
그렇게 빠른 공수를 서로 주고 받기 반각이 지날 즈음, 이번에도 담서진의 호흡이 흐뜨러지기 시작했다.
철우는 양팔을 쭈욱 뻗어 달려드는 담서진을 뒤로 물러나게 함과 동시에, 자신 역시 훌쩍 뛰어 공간을 벌렸다.

“솜씨가 상당하시군요, 이만하면 저는 충분합니다만, 어떻게 더 해 보시겠습니까?”
“아이고, 맞어서 죽는 게 아니고 제풀에 지쳐 죽겠습니다.  됐습니다, 됐어.”
“혹시 구하신 무공 교본이 ‘소림오형권少林五刑拳’인지요?”
“예, 흔해서 가장 구하기도 쉽고, 또 아무래도 소림의 무술이니 위력도 상당할 것 같아서요.”
“옳게 보셨습니다.  비록 소림 본산의 오형권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지만, 간혹 충실하게 지어진 교본도 있어 오래동안 제대로 익히면 신체가 튼튼해짐은 물론 한 몸 지키기에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자, 자, 모두들 들어가서 얘기를 나누도록 함세!”

다음 날부터 담가촌에서 소림오형권을 익히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시간 사정에 맞춰 담노인의 집에 와서 철우와 대련을 하였다.  그동안 잘못 익힌 부분에 대한 지적과 교정, 그리고 수련 중 막혔던 부분들을 직접 몸으로 보여 주며 해결해 주었다.
담가촌은 삼십 여 호의 가구에 주민이 백사십 여 명 남짓인데, 그 중 청년, 중년, 장년 층의 남자 사십 여 명과 아녀자 중 다섯, 그리고 노인 셋이 담노인의 집을 보름 동안이나 때도 없이 드나들었다.
현 상태로는, 오십 여 명 가운데 제법 실력을 갖춰 시전에서 시비가 붙었을 때 제몸 하나 빼낼 수 있는 사람은 고작 예닐곱 명.  나머지 사람들은 기본 자세를 갖추는 것조차 난망이었다.
심지어 여자들과 노인들은 몸매를 가꾸거나 건강을 지킬 심산인 바에야.

“어떻습니까?  생각하신 것보다 더 한심하시죠?”
“아닙니다.  스승이나 사범도 없이 이 정도로 몸을 움직이게 하신 담형의 노고가 눈에 읽힙니다.  방법을 좀 달리 해야겠습니다.”
“어떻게 말인가?”
담서진과 철우, 그리고 담노인이 머리를 맡대고 향후를 논의하고 있었다.

“우선 권을 익히고 있는 사람들을 상, 중, 하로 분류하여 상에 속하는 이들은 제가 한 달 간 지도를 하겠습니다.  어르신께서 마을 일을 조정을 해 주시면 함께 모여 수련을 하는 것이죠.  중과 하로 나뉜 분들은 상급에 속하신 분들이 형편을 봐가면서 지도를 해 주시는 겁니다.”
“오호~”
“소형께 너무 큰 짐을….”
담노인과 담서진이 동시에 감사의 뜻을 내비쳤다.
“그리고 손과 발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무기가 필요합니다.  산에 나무가 많으니 자신의 몸에 적당한 봉棒을 마련을 하시는 겁니다.  봉술棒術은 가장 초보적인 무술이지만 모든 무술의 기본이 되는 바, 이후에 도刀, 검劍, 창槍 등 필요하신 부분을 채우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여 철우와 남자 열한 명이 마을 뒷산에서 아침 식전과 이른 저녁 식후에 모여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하였다.
이미 모두 나이를 먹어서 내기를 키우기는 늦었기 때문에, 우선 간단한 호흡법을 가르치면서 거기에 마보와 궁보를 연결시키고, 움직이는 것과 고정된 두 종류의 권고卷藁를 몇 개 만들어 팔과 손의 힘을 기르게 했다.
이렇게 하면 발과 다리, 손과 팔의 지구력과 파괴력이 높아지고, 체력이 증강되어 쉽게 지치지 않게 된다.
아울러 권법서에 충실한 몸 동작을 펼칠 수 있도록 세세한 지도를 하였다.

그동안 알게모르게 철우와 마을 사람들은 섞였고, 특히 아이들은 한낮에 한가한 철우를 괴롭히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사부님!  오늘은 올무를 놓으러 가시기로 한 날예요!”
“화아야, 아저씨는 아직 올무를 만들 줄 모르는데.”
“에이, 올무는 우리들이 전문간데요 뭘.  사부님은 멧돼지가 나타나면 잡으셔야죠.”
“이런 이런, 그래 앞장들 서거라.”
“우와!”
아이들이 신이 나서 산으로 뛰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철우를 사부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민망한 마음에 그냥 성씨나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는데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사부님이라고 불렀다, 심지어는 담노인까지도.
“소사부!  이참에 우리 마을에 안착을 하는 건 어떤가?  우리 마을 여아들이 제법 참하다네, 비록 배움은 짧지만서도.”
담서진은 한술 더 뜬다.
“사부님!  내와 동서 맺읍시다.  처제가 서시 저리 가라 한다우, 우리 마누라를 보면 알 거 아니우.  어떠우?”
담서진은 철우보다 두 살을 더 먹었는데도 꼬박꼬박 사부님이라고 부르며 말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담서진 마누라?
글쎄다.

“사부님!  저도 사부님께서 가르쳐 주세요!”
“상옥祥鈺인 효찬이가 봐 주고 있잖은가?”
“핏, 저 자식요?  저게 나보다 먼저 오형권을 시작해서지 형편없는 놈인 걸요.  도대체 제 실력이 늘지를 않어요, 벌써 두 달이 가까운데.  그러니 사부님께 배울래요.”
“아니, 저 기집애가!  걸핏하면 몸이 아프네, 집안 일이 밀렸네 요리조리 핑계만 대며 수련을 게을리 하면서 왜 내 탓을 하는 거엿!”
“야 이 놈아!  비슷하게 시작한 봉술은 내가 너보다 낫잖아!  그러니 내가 게으름을 피워서가 아니고 네 놈이 가르치길 개떡같이 해서 그런 거야.”
“저게, 저게!”

사실이 그랬다.
봉술 역시 상급자 들에게 먼저 가르쳤고, 상급자들이 자기 맡은 사람들에게 전달을 하였는데, 철우가 보기에도 상옥이가 봉을 다루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더군다나 봉을 가르쳐 주는 효찬이를 복날 개 패듯이 하며 온 마을을 누비고 다닐 때가 점점 잦아졌다.
청출어람靑出於籃 청어람靑於藍이런가.

봉이란 것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무기였다.  따라서 남녀노소가 익히기에 따로 구분을 두지 않아도 되기에, 늦 배운 상옥이가 가르치는 효찬이를 넘보는 것도 어렵지 않을 터.
“상옥아!  그래도 아직 오형권은 효찬이에게 더 배워야 하는데.  더구나 네게만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도 요구를 할 것이고.”
“사부님!  저 기집애가 아직까지 매파가 한번도 안 오는 것이 저 성질머리 때문이랍니다.  밖에 나가 있는 친척들이 모두 알거든요, 성질 더럽다는 걸.”
“뭐라고! 이, 이!”
둘은 사촌지간인데 나이가 같아선가 어렸을 때부터 저렇게 으르렁거렸단다.  거기에는 상옥이의 말괄량이 기질도 한 몫을 했고.
그러다 상옥이 오형권과 봉을 배우겠다고 나섰는데, 담서진은 효찬이에게 귀찮은 상옥이를 떠 넘겼고, 채 두 달도 지나기 전에 사단이 난 것이다.
“아무튼 오늘부터는 사부님의 조석반朝夕班에서 배울래요.”
“허참.  그럼 이렇게 하자꾸나.  효찬이와 정식으로 비무를 하거라.  네가 이기면 다른 사람들도 불만이 없을테니.  어떠냐, 효찬아!”
“하하, 저야 좋습니다.  코를 납작하게 해주마, 호박덩이야!”
“뭐라고!  이 나쁜 자식, 어디 한번 붙어보자.”

우물이 한곁에 있는 마을 공터가 갑자기 비무장比武場으로 변하고, 심심해 하던 마을 꼬마들과 일을 쉬고 집에 있던 사람들이 나와 공터를 비잉 둘러쌌다.
“상옥 언니 이겨라~”
“에이, 상옥인 상대가 되나.  효찬이가 오형권을 익힌지 벌써 삼 년이고, 더구나 요새 사부님 지도로 실력이 탄탄하다구.”
“효찬이 형!  상옥이 누나 좀 흠씬 패줘요!  왜 우리들을 괴롭히는지 모르겠어요.  시집 못 간 화풀이를 우리에게…,  켁!”
싸울 준비를 하던 상옥이 떠드는 아이에게 득달같이 달려가 쥐고있던 봉으로 머리를 내질렀다.
“저거 보게!  상옥이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찮는가.”

“자, 자.  소란 그만떨고 이리 와 마주 서거라.”
“예.”
“옙!”
자신만만한 상옥이었다.
“절대로 화가 난다고 상대에게 상처를 입혀선 안된다.  알겠느냐?”
“아니 사부님!  싸우는데 피 좀 보면 어때요, 특히 저깟 놈!”
“상옥아, 효찬인 우리집 외아들이다, 좀 봐줘라.”
“앗!  숙부님!  헤헤헤….”

효찬과 상옥이 마주 선 후 공수로 예를 올린 후 자세를 잡았다.
효찬이는 빈 손으로 기합성과 함께 호권 자세를 잡고, 상옥이는 두 팔을 높이 뻗쳐 봉을 가로로 잡은 다음, 오른손으로 크게 한번 휘두른 후 왼다리와 왼팔을 앞으로내고, 오른손으로 봉의 중단 위를 잡아 어깨 높이로 올리고, 왼손으로는 봉의 중단 아래를 잡아 내딛은 왼다리와 평행하게 했다.
상옥이의 기세가 처음보다 눈에 띄게 달라졌고, 자기 키보다 한뼘정도 긴 봉으로 몸의 반을 가리고 선 상옥에게 빈 틈이 뵈지 않았다.
‘오호~  효찬이야 매일 보니 알겠는데 상옥이는 타고 났는가 보군.  봉을 잡은지 두 달만에 저런 자세라면 효찬이가 도망다닐만도 하군.’

두 사람은 시작하라는 철우의 말이 끝나고도 한참을 서로 노려보기만 했다.  
효찬은 처음으로 봉을 가진 사람과의 대련에서 오는 중압감 때문이었고, 상옥은 난생 처음 누군가와 싸움을 하려니 손에 두 달 동안 익힌 무기를 쥐고있다 해도 선듯 손이 나가지를 못했다.
웅성거리며 구경을 하던 사람들도 서서히 입을 다물어 비무장엔 정적이 감돌았다.
이때 상옥이의 날카로운 기합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효찬을 향해 짓쳐들었다.
부웅~
봉을 잡은 왼손을 놓음과 동시에 오른 손목을 돌려 봉을 휘두르며 빠르게 오른 다리를 내밀어 효찬과의 거리를 좁힌 것이다.

육 척 가까운 봉의 길이 중 상옥이 쥔 위치가 삼 분의 이이고, 거기다 상옥이 걸음을 옮겨 다가서며 봉의 끝이 휘이 돌아 효찬의 옆구리를 노리니, 대적 거리에서 한참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효찬은 엉겹결에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우아!!!
둘러선 구경꾼들의 함성에 상옥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고, 반면 효찬의 얼굴은 불그죽죽 우락부락!
“언니! 너무 멋져요~”

상옥은 잠시 생각하다 같은 방법으로 연이은 공격을 퍼부었다.  혼자 연습만 했지 처음 남을 상대로 써보는 봉이라 찌르기나 올려치기, 내려치기보다는 휘둘러치기가 마침하다 여긴 것이다.
휘둘러치기는 힘도 들어가고 상대와의 거리에서도 이득을 볼 수 있으며, 양손을 모두 쓰는 봉술은 아직 숙달도 덜되었기에 현명한 선택이었다.
효찬은 밀릴 수 밖에 없었다.
맨손과 단순한 봉이지만 무기의 효용을 따져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상옥의 일방적인 공격과 효찬의 수비는 비무장을 두 바퀴 돌 동안 계속되었다.

“야, 이 자식아!  도망만 갈래!”
쫓기만 하다 숨이 차오른 상옥이 우뚝 멈춰서더니 삿대질을 하며 효찬에게 욕을 퍼부었다.
“내가 도망가는 걸로 보이냐?  내 제자가 얼마나 성취를 이뤘나 살피는 중이다, 이 기집애야!”
“누가 네 제자여?  나!  지랄이다, 사부님께 배운 것을 겨우 전달이나 하는 주제에, 에라이….”
순간 효찬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주먹을 내리쳤다.
갑자기 공격을 당한 상옥은 헛바람을 들이키며 봉을 두 손으로 잡아 가슴어림에서 효찬의 공격을 막았으나, 효찬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몸을 낮추며 오른발을 축으로 몸을 빙글 돌려 상옥의 허리에 일권을 질러 넣었다.
“켁!”
갑자기 숨이 막힌 상옥은 입을 벌리고는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이런!”
철우는 몸을 날려 한손으로 상옥의 몸을 받쳐들면서 다른 손으로는 소요혈笑腰穴을 쳐 굳어가는 몸을 풀어주고, 곧바로 현기혈玄機穴을 눌러 숨을 통하게 한 다음 땅위에 눕혔다.

사람들이 웅성웅성서리는 중에 두 중년 남자가 뛰어와 상옥의 상세를 살폈고, 효찬은 엉거주춤 다가와서 어쩔 줄 몰라했다.
“야 이놈의 자식아!  그냥 한 대 맞아 줄 것이지, 이게 뭔 짓이냐, 이 망할 놈아!”
효찬이 아버지는 효찬이의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소리를 질렀고,
“아이고 형님, 대련하다 그런 걸….”
상옥이 아버지는 말은 그래도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상옥이는 조금 후면 깨어날겁니다.  제가 미리 말렸어야 하는데 효찬이 움직임이 너무 빨라 대처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사부님이 죄송할 게 뭐 있나요.”
“자 자, 얼른 상옥이나 옮깁시다.”

저녁상을 마주하며 담노인이 말을 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말게.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고, 또 비무나 대련이란 것이 조금은 사실적이어야잖는가.”
“죄송합니다.”
“사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혈연관계라 큰 소리 날만한 일도 참고들 지내고 있는 형편이네.  오늘 두 아이 아버지도 내 숙부님 아들들이니 더 이상 탈은 없을 것이네.  그나저나 아이들 솜씨가 어떻든가?”
“십일봉十日棒, 백일창百日槍, 천일도千日刀, 만일검萬日劍이라 하여 봉을 익히기가 비교적 쉽다고는 하나, 다른 무기들을 다루는 기본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 가벼이 볼 무술은 아닙니다.  상옥이 솜씨는 아마 타고난 듯 싶습니다.  오늘도 경험이 좀 있었으면 효찬이의 접근을 철저하게 차단하며 공격을 이어갈 수 있었을텐데, 호승심에 맘을 놓았던 게죠.  효찬이를 비롯한 젊은 친구 예닐곱은 중견 표국에 가도 표사 대접은 받을 수준입니다.  다만 표사들은 대부분 병장기를 지니고 다니니 봉술을 한두 해 익힌 뒤에 검이나 도를 익혀도 좋겠습니다.”
“모두 자네 덕이네.  우리가 젊은이들에게 힘을 기르라는 것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라네.  물론 대처에 나간다고 하면 막을 수는 없지만, 우리 늙은이들 바램은 그렇다네.  허긴 내 아들놈들도 모두 도망가버리긴 했네만….”
짧은 소란은 며칠이 지나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싶게 마을은 여전했다.

철우가 담가촌에 든지도 벌써 석 달이 지나 완연한 여름이었다.
원래 한 달을 기한으로 했는데, 조석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또 이왕 가르치는 바에야 어느 수준까지는 올려놓고 싶은 욕심에 나날이 더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철우가 아직 떠날 생각을 못하는 것은, 마을에 처음 오던 날 담노인에게 청한 가르침에 대한 답변을 못 듣고 있어서였다.
무엇을, 왜.
철우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의지하는 것이 우습기도 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그다지 뜻있는 삶일 것도 아닌데.

“성盛아, 그런데 올무를 왜 이런 곳에 놓는 것이냐?  아까 저기 오가기 편한 길을 놔 두고.”
성아는 이리저리 지형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고 화아가 대답을 했다.
“에이, 사부님두…, 토끼나 고라니가 날 잡어 잡수하고 대로를 달리나요.  짐승들이 다니는 길이 따로 있어요.  성이는 지금 그 길을 찾고 있는 거고요.”
“아하, 그래서 이렇게 덤불을 헤치고 들어왔구나.  그나저나 옷 다 찢어지겠다, 얼른 나가자꾸나.”
아이들 성화에 못이겨 따라 나온 철우는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위해를 끼칠만 한 것이 있을까봐 주변을 유심히 둘러보았다.
‘응?’
“너희들 말고 어른들도 올무를 놓으러 오느냐?”
“우리들이야 재미로 하는 거예요.  마을에서 가축을 키우니 어른들은 거의 올라오질 않아요.”
그렇게 두어 곳에 올무를 더 놓고는 마을로 돌아왔다.

“어르신, 이제 돌아가야겠습니다.  너무 신세만 지고있습니다.”
“자네가 머물만한 곳두 아니니 그래야지.  신세는 무슨, 자네가 공밥 먹었든가.  자네 덕에 마을에 활기가 넘치고 사람들 마음이 평안해졌어, 알게 모르게.  아낙들이 제 남편들 튼튼하게 해 줬다고 자네에게 상이라도 주려는가 보더라고, 기대해 보게.”
“예?”
“아, 다 처져가던 놈들을 빳빳하게 세워줬잖은가 자네가, 그 마본가 뭔가….”
“하이고 어르신!”
“허허허!”
“하하하!”
“그래 어디로 가려는가?”
“….”
“자네 나이도 있고 생활도 꾸려나가야 하니 우선은 대처로 나가 자리를 알아봐야 할텐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저 역시 그리 생각하고는 있습니다만, 배우고 아는 것이 사부님께 배운 것이 전부라 망설여집니다.”
“무슨 소린지 알겠네.  자네 공부가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것이니, 비록 짧지만 지금까지 겪어 본 자네 성품으로는 마땅하지가 않을 걸세.  자네 마을 아이들에게 올무 놓는 놀이를 그만두라 했다면서, 올무는 짐승들을 고통스럽게 죽인다고.”
“예.  그런 뜻도 있었습니다.”
“응!  무슨 다른 이유가 또 있었는가?”
“아닙니다.”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담노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사람에겐 운명이란 것이 있네.  젊었을 적에야 운명이란 것이, 내가 타고 넘어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지만, 지금 이 나이에서 돌아보면 다 부질없었다는 생각이 든다네.  자네 공부가 그러했다면 굳이 거부하려 하지 말게.  공부를 풀어내며 자네가 지니고 있는 심성만 잘 지키고 살면 나처럼 늙어 후회하는 일이 적을 것이네.”
“예, 잘 알겠습니다”

담가촌에 온지도 반년이 지났다.
봄 가운데 쯤에 나왔는데 지금은 단풍이 곳곳에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오늘 이렇게 여러분을 다 모이시라고 한 것은 그동안의 성과를 살펴보고 향후 어떻게 하셔야 하나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예, 그동안 저희들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저마다 철우의 노고에 한마디씩 감사의 말을 했다.
“자 여기에 여러분 개개인의 장단점과 앞으로 더 심도있는 공부를 하고자 할 때 필요한 사항을 적었습니다.  읽어보시고 제가 며칠 더 머물 예정이니 언제든지 들러주십시오.”
노인들 몇을 제외한 마을 사람들이 천자문이나 사자소학을 익혔다고 하니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헤헤헤, 사부님!  제 술 한 잔 받으세용~”
오늘따라 제법 옷을 갖춰 입은 상옥이가 청화백자호로靑花白磁葫蘆에 담긴 술을 따르자, 담노인이 일어나 말을 했다.
“오늘 이렇게 소사부 덕분에 마을 사람 모두가 한 자리에 모였네.  뭐 소사부에 대한 고마움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자, 오늘 오랜만에 푸짐하게 먹고 마실 수 있게 장만을 했으니 마음껏 즐기게!”
우아!
철우가 떠난다고 하자 담서진이 앞서서 동네 잔치를 사흘 동안 준비를 했다.
철우에게 직접 사사 받은 사람들은 물론 그 밖의 사람들과 남녀노소 모두가 마주칠 때마다 고맙다는 말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철우로서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처음 맛보는 일이었다.  더구나 본인 생각으로는 그다지 큰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알고 있고 익히고 있는 것을 조금 나눠 주었을 뿐인데.
“싸부우님~  한 말씀 하세요오~”
우아, 짝짝짝.
“고맙습니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오히려 제가 송구스럽습니다.  어디 가서도 못 잊겠습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우아아아.

마을 공터에서의 환송연 겸 잔치는 삼경을 넘어서야 끝이 났고,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숙부님!  숙부님!”
인시寅時 초初, 낮지만 다급한 목소리가 담노인 방 앞에서 들렸다.
그러잖아도 밤 잠이 없어져 뒤척거리던 담노인이 부시시 침상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탁진琸璡이 아닌가?  아직 집에 가지 않았는가?  들어오게.”
담탁진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담노인은 우려낸지 한참을 지나 싸늘하게 식은 차를 한 잔 내밀었다.
잔을 받는 담탁진은 심히 떨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차를 한모금 마신 후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제 집사람이 죽었습니다.”
“뭣이라고!  다시 말해 보게!”
“제 집사람이 간살姦殺을 당했습니다.”
“흐음….  언제 알았는가?”
“잔치가 끝나고 몇이서 서진네 집에 가서 몇 잔 더하고 와서 보니….”
“우선 큰소리를 내지 말게.  가 보세”
담노인은 서둘러 옷을 갈아 입었다.
“숙부님, 어쩌죠?”
“이 사람아 진정을 하게.  아이들은?”
“자고있습니다.”
“자 자, 얼른 가 보세!”

담노인과 담탁진이 대문을 나서 담탁진의 집으로 발걸음를 서두르는데, 얼마 지나 맞은편에서 그림자 하나가 다가서고 있었다.
“어르신, 어디 가시는지요?”
“아!  소사부!”
담노인과 담탁진은 걸음을 우뚝 멈췄다.
‘…’
‘…’
‘…’
“어디 다녀오는가 보군.”
“예, 술기운 좀 가셔볼까 하고 좀 걸었습니다.”
“그런가.  먼저 들어가 쉬게, 급한 환자가 생겨서 가보는 길이네.”
“예, 그럼 다녀오십시오.”

제 일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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