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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껄떠벌

2. 첫 손님

2020.02.09 07:47

조회 수:11

2.  첫 손님


“어!  당신이 웬일이야, 이 시간에!”
“조퇴했어.  당신에게만 맡겨두면 불안해.”
“남편을 그렇게 못 믿어?”
상옥이 핸드백을 주방 안 작은 방에 놓고 나오며, 명서를 빤히 쳐다봤다.
“알었어!  알았어.  내 죄는 아니까, 됐어!”

가게 준비를 다 끝내고, 주말을 맞추느라 하루를 쉰 금요일에 가게 문을 열었는데, 불안했던지 상옥이 조퇴를 하고 온 것이다.
이제 점심시간이니 아직 술손님이 들 시간은 아니다.

모르지 또, 명서처럼 시도 때도 없이 술을 찾는 사람이라면.
며칠 전에 명서는, 점심시간에 어디서 낮술을 할까 기웃거리다 보니, 한 백반집 점심부페가 6,000원 이었다.  소주 한 병 4,000원이니 만 원이면 땡!

그런데 언젠가 점심부페집에 생각없이 들어가서 접시 가득 안주를 담아 와,
“아줌니!  쏘주 하나요~”
했더만,
“우리집은 술 안 팔아요.”
교회 다닌단다.

그 기억이 떠올라 부페집에 들어가지 않고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니, 음료수 냉장고에 쏘주가 진열되어 있었다.
“됐군!”
기세좋게 들어가 접시에 안주로만 가득 담어 온 후,
“아줌니, 쏘주 하나 꺼낼께요!”
했더니 아줌니 왈曰,
“술은 저녁에만 팔아요.  낮엔 식사 손님들 뿐이라 안 되요!”
이런 떠그랄!

“엄마는?”
“아직 시간이 이르잖어.”
“당신같은 사람들도 있잖아아!  엄마도 참, 좀 서둘지...”

안주를 고민하다 요리를 좀 배우겠다고 하니,
“김서방!  음식이란 것이 배웠다고 해서 바로 똑같은 맛이 나는 게 아닐세.  내가 한동안은 홍어무침하고 밑반찬을 준비해 줌세.”
“아니, 왜 엄마만 고생해!”
함께 듣고 있던 상옥이 날카롭게 외쳤다.
“밑찬은 당신 엄마보고 해 오라해!  엄마!  엄만 홍어만 맡아요.  홍어값이랑 양념값은 내가 챙겨다 줄께.”
“애, 애!  그럴려면 수고비도 줘야지!”
“엄마!”

“그런데 여보!  가게 이름 괜찮겠어?”
‘술집 木可川’
가게 출입문 위에 붙은 간판이다.
그런데 이 가게 준비하면서 제일 비싸게 먹힌 것이 저 망할놈의 간판이다.
명서 옛날 애인 이름이란다, 木可川.
“이젠 못 바꿔.  바꾸는 비용을 물어보니 처음과 똑같다네.”
“좋겄다!”

상옥은 근 일주일을 저녁마다 명서와 싸웠다.
아니 명서가 아니라 木可川과 전쟁을 벌였다.
하루는 퇴근 후 회식 자리에서 술이 만만해져 들어 와 대판 싸웠다.

“얌마!  너만 애인 있었냐?  나도 널렸었어!”
“알았어, 알었어.  진정해!”
“병신!  따먹지도 못한 년을 뭔 심정으로 끌이구 사는 겨!”
“아이고~  고만해!  세인이 깨잖아.”
“얌마!  나는 씹한 남자만 셋이다!  셋!”

그날 명서는 셋 중에 하나를 고르지 않으면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겠다는 상옥을 말리느라 진이 다 빠졌다.
현철, 대관, 진아.
상옥과 몸을 섞은 세 남자들이란다, 이런 니미랄!

둘이서 점심으로 라면 두 개에 햇반 한 개를 나눠 먹고 있는데 남태숙이 왔다.
“밥 있고 반찬도 있는데 몸에도 안 좋은 라면을 먹누?”
“엄마! 이 라면이 왜 안 좋아?  당신 딸래미가 만드는 라면이야!”
남태숙이 아차 싶었다.
상옥이가 그 라면 회사 연구실 과장인지 차장인지 뭐랬는데.
라면 스프에 들어있는 소금과 MSG는 상옥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장모님, 무겁게 뭘 두 개나 가져오셨어요?”
남태숙이 들고 온 것은 2.6리터짜리 락앤락 김치통 2개였다.
“하나는 홍어초무침이고 하나는 쪽파김치네.  홍어는 많이 해 놓으면 물이 생겨 안 좋네.”
“점심 전이시면 이 홍어하고 식사를 들고 가시죠?”
“준비하면서 간을 보느라 먹었더니 생각이 없어.  상옥인 예 있을 거냐?”
“응.  첫 손님 마수걸이하고 들어가려고.  먼저 가세요.”
“그래.  가게가 무슨 카페처럼 인테리어를 해선가 참 좋다 야!”

남태숙이 가면서 한 소리는 괜히 한 소리가 아니다.
木可川의 인테리어는 상옥의 작품이다.
웬수같은 木可川을 품은 상옥은 예수님이다, 웬수를 사랑하였으니.

“자랑하고 싶어?”
“...”
“다음 주에라도 개업식을 할까?”
“됐어.”
“늘 당신을 섭섭하게만 하네.”
“그게 당신 재주잖아.”
“이렇게 비비꼬는 건 당신 특기고.”
상옥과 명서는 서로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상옥이 먼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래서 같이 사나 봐.”

개업식을 해야잖냐는 양가 어른들의 말에 둘은 고개를 저었다.
주변에 늘 신세만 지며 살고 있는데, 낯이 서지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상옥의 신박한 작품 木可川은 슬펐다.

입구는 깔끔한 첫 이미지를 주기 위해 화이트칼라로 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눈에 띄는 전체적인 구조가, 고급 일식집의 카운터석으로 이루어졌다.
‘ㄱ'자로 생긴 2단의 카운터 테이블을 기준으로, 한쪽 벽으로는 주방과 집기, 설비가, 테이블 앞으로는 긴 쪽에 5개, 짧은 쪽에 2개의 의자를 놓았다.
가게 평수가 작은데 주방을 들이다 보니 탁자를 놓기가 어려워 카운터석으로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통로는 협소했다.

천장과 양쪽의 벽과 선반은 지붕의 모양새에 따라 밝은 색의 목재로 연결하고, 천장의 구조목들 사이로 약간 어두운 매립등을 달았다.
대신에 테이블 위로 포인트 등을 길게 내려 아늑한 느낌이 들고, 술과 식사를 밝은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게 했다.

천장과 벽이 맞닿는 곳에는 길게 유리를 달아 공간이 넓어 보이게 했고, 선반도 목재만 사용하여 일반 식당과 다르게 고급스러웠다.
거기다 음료진열장도 내부의 색과 조화를 이루었고, 벽에는 나무 옷걸이도 달았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은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상옥은 테이블 의자에, 명서는 주방에 있다.

‘딸랑!’
두 사람의 눈이 얼른 문으로 향했다!
실망.

“어머님!  아버님도 오셨네요!”
“에미도 와 있었구나!  회사는 어쩌고?”
“조퇴했어요.”
“그랬구나.  명서야, 밖에 차에 가서 짐 좀 가져와라.”
“예.”
상옥의 시부모도 궁금했었나 보다.

“세인이는 요즘도 사돈댁에서 보겠구나?”
시아버지 김문회는 세인이 왕팬이었다.
그리고 세인이가 버릇없는 행동을 할 때 보면, 모두 시아버지가 괜찮다, 그래도 된다 했던 행동들 이었다.

시어머니 최난옥은 통로를 주욱 지나 주방에 들어가 여기저기를 살펴봤다.
죄다 새 물건인데 무슨 신경쓸 것이 있을까 싶다.
그 생각이 미치자 상옥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어 시어니에 대한 생각을 떨쳐냈다.
“어머니, 음료수 좀 드릴까요?”

명서가 들고 들어 온 짐을 풀었다.
상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최난옥은 2단 카운터 위쪽에, 명서와 김문회가 상자에서 꺼내는 것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멈아!  접시 좀 내와라!”
“아!  예.”
시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제풀에 깜짝 놀란 상옥이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시루째 올려진 시루떡에서는 증기기관차 화통처럼 김이 피어 올랐다.
쟁반에서는 돼지머리가 웃고 있다.
통북어는 타래실의 포박을 받았고, 사과, 배, 감, 대추, 밤에 삼색나물...

“아, 뭣들하고 있냐! 어서들 손이래두 씻구, 에미는 손에 물을 묻혀 머리 좀 다스려라!”
“예!”
상옥이 대답하는 사이 두 부자가 후다닥 주방으로 가 손을 씻었다.
“당신은 촛불 두 개 좌우로 불 붙여놓고, 명서는 향 좀 피워라!”

그렇게 개업고사가 30여 분동안 이어졌다.
칠순이 가까운 사람과 이제 그 반을 넘기는 사람의 사고와 행동이 같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뭐, 잘되라고 하는 일이지...’

휘몰아치듯 행사를 마친 최난옥은 김문회를 앞세우고 가게를 떠났다.
“명서야!  너 오늘 술 마시지 마라!”
“음복은 해야죠?”
“얌마!  그거 내가 가져갈거다!”
아이고,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더라.

“당신은 오늘같은 날에도 술이 급해?”
“그게 아니구, 제사나 고사 지내고 난 후에 음복을 꼭 하라구 배웠거든.”
“오호~  그러셔!”
상옥은 혀를 쯧하고 말았다.
마이동풍에 우이독경.
소주에 밥을 말아먹지 않는 것만도 황송하니까.

해가 많이 길어졌다.
그래도 5시가 넘으니 아파트 그림자가 점점 더 짙어졌다.
명서나 상옥이나, 무엇을 이렇게 간절히 기다려 본 것이 언제였나 싶다.
두 사람이 연애하며 수도 없이 헤어졌을 때도 이런 심정은 아니었다.
“당신은 들어가지 그래.”
“아냐, 조퇴까지 하고 왔는데.  오늘은 내가 거들께, 낼부터는 혼자 해야잖아.”

일 없이 그냥 있자니 살을 섞고 사는 부부간인데도 어색했다.
“이리 와, 안아줄께!”
“됐어.  손님 들어올라.”
“어!  그렇담 안고 있어야겠는데!”
“참내...  아!  됐다고!”

날이 어두워지자 아파트 단지 뒷길이라선지 낮에 가끔 보이던 행인들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상가도 대부분 일찍 문을 닫고 귀가를 했다.

“떡하고 돼지고기 잘 먹었슈.”
“아!  끝나셨어요?”
세탁소 주인이었다.
“일감이 있으면 늦게도 하는데 요즘엔 좀 일찍 들어가고 있쥬.”
“다른 가게도 그렇죠?”
“일도 없이 가게 열어 놓으면 머 해유.  그나저나 개업일엔 화환이래두 거시기 쭈욱 있으믄 사람들이 좀 알아볼 거인디...”
“부러 알리지 않았어요.”
이곳에서 술장사를 하면 어쩌냐는 걱정을, 명서 부부보다 더 크게 하고는 세탁소 주인도 갔다.

“여보!  들어와요!”
담배를 피고나서도 한참을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상옥이 가게 문을 열고 고개만 내밀어 말했다.
“어, 아직은 좀 춥네.”
“절기만 입춘이 지났지 아직 겨울야.  얼른 들어 와!”

명서가 들어가자 상옥이 주방에 들어가더니 주섬주섬 몇 가지를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당신, 소주에 돼지머리 좋아하잖아.  낮에 어머님 몰래 한 접시 챙겨놨어.”
“헤헤헤~”
“그렇게 좋아?”
“당신이 더 좋아!”
“지랄이다!  며칠 전엔 술이 더 좋다며!!!”
“에이 뭔 소리야...”

“당신도 한 잔해!”
“운전은 누가하고?”
“걷지 뭐, 간만에.  내일 쉬잖아.”
“그래.”

둘은 소주를 마시다, 장사 첫날 기념으로 쏘맥을 말아 건배를 외쳤다.
“손니~이~ 임~  댁이 이 가게, 술집 木可川, 첫 손님이라우!  그래서 내겐 세상에서 젤 소중한 사람이라우...”
고개를 떨구며 잘게 흐느끼는 명서를 끌어안은, 상옥의 눈에서도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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