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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

내가 세상 사는 법

2011.05.29 13:01

조회 수:993

 

05.08.27 14:38

   

요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많다. 서울에서야 일 하는 곳과 집, 그리고 사회와 세상에 대해 매일 오감을 열어 놓고 부딪히니 당연히 그런 일이 많겠지만, 24시간 회사에 있으면서도 이러는 것을 보면 내게 문제가 많은가 보다. 그저, 해 뜨면 일 하고 저녁에 쉬는 단순한 일상만 반복하는데 뭔 갈등이 그리 깊어지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 아침엔 숙소에서 나오며 이렇게 생각했다. "버려두자.미우면, 고까우면, 속 상하면 그런대로 두고 보자. 굳이 그것을 바꾸려 애 쓰지 말자. 내 할 일이나 하고 있으면 언젠간 좋아지겠지, 버려 두자!"

   

그제 오후부터, 가마솥 같던 열기가 가라앉더니 오늘 아침엔 반소매 차림에 소름이 돋는다. 매번 계절 이쯤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이 참 능갈스런 동물이다. 언듯 긴소매 생각이 지나가니 말이다. 여름 들며 내내 책상에 앉으면 틀던 조그만 선풍기 바람도 오늘은 벌써 두번이나 끄곤 했다, 발가락이 시려워서.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게 사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 아닐까? 몸이 바라는 대로, 생각 내키는 대로 살아 주는 것, 이것이 제대로 세상 사는 법이 아닐까? 그럼 짐승과 뭐가 다르냐고 하겠지만 사람이 어디 짐승보다 더 나은 것이 뭐가 있는가? 오히려 인간이란 탈 속에 온갖 속임만 가득하지 않은가? 그러니 내키는 대로도 살아 볼 일이다.

 

회사에 나보다 열한두 살 더 먹은 놈이 고문이라고 드나들고 있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공장 고추장과 된장 만드는 것 뿐인데, 사장은 이것저것 해 보고 싶은 가 보다. 그래서 유명하다는 김치 공장에서 있던 놈을 데리고 왔다. 지미, 근데 이놈 뭐 제대로 아는 것도 없다. 어깨엔 힘이 잔뜩 들어 있다. 게다가 내게 이래라저래라 한다. 그래, 너 맛 좀 봐라. 벌써 두 달째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오면 오고, 가면 가고, 지랄을 떨면 그런 가 보다, 나 한테 뭔 말을 붙여도 그냥 바람벽 흉내만 낸다. 식당에서 마주쳐도 니 밥 너 처 먹구 내 밥 내가 떠 먹는다. 며칠 전엔 우리 직원에게 그러더란다. 자기 평생에 이런 대접은 첨 이라구. 야! 이눔아! 아적 멀었다. 넌 내가 죽여 버려야 할 적! 내겐 적 아니면 동지, 둘 중에 하나 뿐이다.

   

난 후회하지 않는다. 어렸을 적에도 결코 후회 해 본적이 없다. 어떻게 보면 후회 할 기회가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아뭏든 이제 늙어 가면서는 아주 체질이 돼 버렸다. 후회는 대개 어떤 선택의 순간에서 부터 시작이 된다.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선택한 것에 대해 포기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뒤집어 보면 선택하지 않은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더 이상 거들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그리 살고 있다. 가장 최근의 일로는 작년 5월에 중국의 첫 직장을 그만 둘 때이다. 그만 두고서 예상되는 나쁜 상황이 결코 내가 감당 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주의 간곡한 회유가 있었음에도 난 사직을 결심했고 그리 했다. 그리곤 생고생을 다시 하면서도 한번도 괜히 그만뒀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왜? 사람이 산다는 것이 결코 되물러 가며 즐길 수 있는 장기판이 아니니까.

   

이 얘기 시작한지 일주일이 넘었다. 토요일이 법정 휴일이라 아무래도 토요일 근무 때에는 조금 느슨하게 현장을 지킨다. 그러쟎아도 새로 고추장을 가르친 공인에게 인력관리며, 설비며, 위생관리 등등을 모두 맡기고 있는터라 지금도 현장을 둘러 보지 않고 이리 끄적이고 있다. 현장을 맡기면서 꼭 이렇게 얘기 했다.

"알아서 하고 싶은대로 해라. 단, 그 결과는 네 책임이다. 만약 책임지는 것이 부담스러운 상황이 닥치면 반드시 보고해라."

지금 그 친구 잘 하고 있다. 지난 번 클레임 건이 발생 했을 때 사장에게 이렇게 얘기 했다.

"제 책임 입니다.제가 변상을 하겠습니다. 단, 그 회사와의 이후의 거래에서는 절대로 제 의견대로 하셔야 합니다."

사장이 그러드라, "여직 우리 회사에서 내 책임 입니다 한 사람은 당신 뿐"이라고.

의무와 권리 지키며 살기, 그런면에서 난 훌륭한 민주시민이다. 그런데 말이다, 기실, 이 부분에서 부터 내 인생의 모순이 시작되고 있다.

   

남자가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단다. 어렸을 적 눈물 흘린 것이 딱 두 가지 기억에 남아 있다. 하나는 국민학교 1학년 초, 담임이신 강오석 선생님이 우리 동네 앞 신작로 저만치에서 가시고 계셨다. 인사를 하려고 막 달려가다 넘어졌는데 선생님은 그것두 모르시구 그냥 가 버리셨다. 그래서 울었다, 까진 무릎이 아파서가 아니구 선생님이 그냥 가셨다는 것이 분해서. 또 하나. 역시 국민학교 3학년 쯤 일게다. 외할머니는 막내 이모 집에 쌀을 구하러 가셨는데, 다 저물도록 오시지 않는 것 이었다. 배는 점점 더 고프고, 힘이 없어 베개를 베고 누워 있었다. 은자가 학교 앞 문방구에서 조그만 칡뿌리 하나를 사다 주었다. 그거라두 씹고 있으라구. 헤, 그날 디게 울었다, 칡 씹으며. 무언가 힘든 일이 닥치면, 그 축축한 베개의 촉감이 지금도 그대로 살아 느껴진다. 난 잘 운다. 수염이 허애지며 더 잦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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