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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나

나를 사랑한 단 한 여인, 張香子

2017.08.09 10:20

조회 수:142


05.10.11


제가 원래 여자를 참 좋아 합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지금도 여자 없인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요 근 2년, 몇 밤을 빼고는 매일 뜬 눈입니다.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여자들의 적선을 바랍니다. 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이런 습성이 생긴 것이 유아기 때부터 인 듯 합니다. 그러니 고등학교 다닐 때라구 다르지 않구 어지간히 껄떡거리구 다녔습니다. 

곁에서 지켜 보던 친구 한놈이 불쌍타구 주소 하나를 건네 주더군요. '오광석'이라구, 대전 신흥동에 살았는데, 조상 중에 이순신 세컨드가 있었던 뼈대있는 집안이라구 늘 자랑을 했습니다. 

얼굴이 까무잡잡하구 사귐성이 좋아 동기들 중 모르는 애가 없습니다. 대학교 다닐 때는 '백마들'이라는 학내 그룹에서 뭘 했는데, 기탄가 보컬인가 모르겠네. 아마 대학가요제에두 나갔을 겁니다. 참, 제법 가까웠으면서두 정보 내용이 부실합니다. 마지막 소식 들은 것이 경상도 어디서 쌤하구 있다던데, 여학교 아니길 두손 모아 기도 합니다. 딸 가진 입장에서, 남잔 노소를 가리지 않고 도둑놈이니까, 특히 '광석이!'


충북 영동군 양산면 봉곡리 407번지.장향자.

금강 상류, 양산팔경 중 강선대降仙臺라는 정자가 있는 동네에 살던 사람입니다. 한참 주간지 뒤편 펜팔란의 이쁜 여자 이름에 죄다 우표딱지 붙일 때라, 더구나 같은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데 부쩍 호기심이 치밀어 침 발라 한 통 보냈습니다. 보나마나 '미지의 소녀에게'라는 서두였을 겝니다.


미지의 소녀에게!

벌써 신록이 짙어져 저녁 바람이 제법 훗훗 합니다. 초여름이라곤 하지만 갈길을 잃은 소년의 방황처럼 계절도 병을 앓고 있나 봅니다. 

뜻밖의 글에 많이 놀라셨을 줄 알고 있습니다. 전 댁의 친구분이 알고 있는 대전의 광석이 친구입니다. 물론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글로 먼저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하략이 아니라, 실은 전혀 기억이 없음)


아마 저렇게 시작을 해서 한 서너장, 분홍빛 편지지에 정성을 다 했습니다. 혹여 답장이 오지 않을까봐. 

그 당시 펜팔란 여자 주소의 99.9899999%가 다 가짜여서 답장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 였거든요. 그래두 광석이가 아는 여학생인데 가짜면 어쩌나 하는 걱정보다는, 내 글빨이 부족해서 맘에 안들면, 그래서 답장은 고사허구 깜상이 욕을 먹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한 주일을 보냈습니다.

그 당시 한반도에서 편지 오가는 시간이 대략 가는데 사흘, 답장 쓰고 오는데 또 사흘, 한 열흘 걸렸을 겝니다. 사흘은 포기를 한 채.

조마조마, 콩닥콩닥, 두근세근 두근네근, 불안, 초조초조초조초조초조조초조초, 긴장, 스릴, 서스펜스, 니미랄, 좆까라 포기 할 때 쯤 답장이 왔습니다.


계절 인사, 내 편지를 받고의 놀라움과 기쁨, 답장에 대한 망설임, 그리고 집필의 고통, 몇 날 몇 밤 쓰고 찢고, 되쓰고 망설이다 이튿날 찢고, 찢은 것 붙여 보다 아까워 어쩔 바 모르고가 그냥, 편지지, 아니지 색깔 고디운 그 맘에 그득했습니다. 

오메, 심봤다!!!!!!!!!!


참나, 나 보다 연애편지 더 잘 쓰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가을에 접어드니, 마른 꽃잎이며 낙엽이며 갖은 장식이며가 오는 편지마다 그득했습니다. 그 편지는 몇몇 문학지망생들 사이에서두 제법 감상평이 들리곤 했습니다. 

나처럼 권력이나 폭력에 약할 수 밖에 없는 애들의 유일한 뽐내기 였습니다. 질시와 부러움이 내 보기에도 적잖았습니다.


럭저럭 해가 바뀌어 3학년이 됐습니다. 증말 오고가는 편지루 우리 둘은 깊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우리의 만남이 어떨까 하는 부분에서 잠시잠깐씩 주춤거리긴 했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우린 여전히 분홍때깔 편지지 속에서만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펜팔을 하던 이들의 공통적인 문제, 이젠 얼굴 좀 봐야지! 

하! 글이 이럴진대, 이쁘고 착하고, 손 정도는, 잘하면 주먹들이 자랑하는 하룻밤 만리장성두! 크크크, 대전 한 번 놀러 와야지! 

싫다는데, 몇번을 협박하여 드디어 날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시외버스터미널이 정동에 있었는데, 온다는 시간에 맞춰 두근거리는 가슴을 다독이며 두시간 정도 서성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온다는 시간 보다 꽤 일찍 나갔었네요. 

영동 뻐스가 열대 정도 들어 왔을 때, 그 마지막 버스에 두 여학생이 타고 있었습니다.


헉! 대충 절 알아 보고는 손짓을 지들끼리 하는데, 한 사람은, 그리구 한사람은. 

참, 그 짧은 순간 무지하게 빌었습니다. 지발 차창 쪽 사람이 아니기를.


어디 가 보고 싶은데 있어유? 

대전에 자주 못 온다면서유? 

바쁘면 안 와두 되는디, 구럼 어차피 대전을 잘 모릉께 지가 안내할께유, 보문산이 젤 유명한디...

보문산! 참 지겨운 산! 

뭐라? 송시열이가 그랬다고라! 여자 음부가 뭐 어쨌다고?

헉헉대며, 그 쪽은 암 것두 모르면서 삘삘거리며, 보문산 전망대보다두 더 깊이 숨어 들었습니다. 

보문산 하면 제법 아는 나두 모르는 골짜긴지 등성인지루, 에이, 씨팔. 

그 때, 꼭 그랬습니다. 

어떤 등성이에 앉아, 둘이 빵부스러기루 점심을 때웠습니다.


예, 말씀드립죠. 지랄, 디게 못 생겼었습니다. 목소리 이뿐 여자허구 글빨 쎈 여잔 박색이 정답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역학의 전붑니다.


그날 그 사람이 돌아간 이후 편지를 쓰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안타까움에도, 한번두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 땐 몰랐습니다. 그게 얼마나 잘 못하는 건지. 


3학년이 지나구 재수가 끝나는 때 예비고사 성적을 걱정하는 편지가 마지막이었습니다. 답장두 받아보지 못하는. 

그리군 아주 긴 시간, 그 사람을 잊고 살았습니다. 당연히.


그리구, 뭔 생각으론지 한참 전부터 그 사람을 찾아야겠다구 벼르고 있습니다. 

찾아서 뭘 어쩔까는 모르겠지만,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은 용서를 빌고 싶습니다. 아직 그 사람 글씨는 남아 있습니다. 다른 여자들 것 다 버렸어두, 그 사람이 혼자의 안타까움 속에 보낸 '영미시인 여류 시선집 - 못잊어'는 아직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앞으루두 저 하구 같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다시 향자를 찾습니다. 염치 없지만 학산상고 동문들의 많은 협조를 바랍니다.


ps : 금강변이 넘쳐 그 사람 책가방두 없어지구 목숨마저 어려웠을 때 제 생각만 했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루... 

암튼 세상에서 유일하게 절 좋아해 준 여잡니다.

010 - 5802 - 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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