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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나

첫사랑, 숙이 누이

2011.05.26 18:36

조회 수:564

 

누이를 처음 본 것이 내가 국민학교 7학년 -재수- 때였는데, 누이는 중학교 3학년 이었다. 그 때야 뭐 젖비린내 나는 여학생이라 내 관심 밖이었다. 난 이미 그 당시, 성적인 만족감을 아는 나이였으니...

 

누이네 집은 우리집 들어오는 골목길 초입에 있었다. 다섯 채가 똑같이 지어진 집이었는데, 누이네 집이 젤 잘 살았다. 자물쇠 달린 뚜껑이 있는 흑백 텔레비젼두, 냉장고두, 그리구 몇 년 뒤 피아노두 그 집이 우리 골목에서 제일 먼저 장만을 했다.

 

누이 엄마는 어느 해 겨울, 동네에서 얼어 죽었단다. 누이 아버지가 약주를 디게 좋아하셨는데, 혼자 약주 드시기 심심하시다구 색시에게 술을 가르쳤고, 나중엔 누이 엄마가 알콜 중독이 되어 쉐타를 벗어주고 술을 마신 후, 그게 그만 그렇게 되었단다. 그래서 3녀2남, 5남매가 그 아저씨와 새 아줌마와 그렇게 살고 있었다. 누이가 장녀였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가끔 들러 이것저것 물어 보곤 했는데, 그러다 인수분해를 혼자 시작하면서는 거의 매일 들르다시피 했다. 그런데 아뿔싸, 그것이 공부 때문이 아니란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내 속은 오직 그녀로 가득 차 버렸다.

 

단발머리에 손바닥만한 빵떡모자를 얹고, 잘록하니 허리를 맨다음, 몸빼바지 비슷한 교복을 입을 가을쯤부터는 이미 내 상사병은 치유불능의 상태로 치닫고 있었다.

 

학교가 파하면 밤 10시까지 대전여고 교문 근처 가로등 그늘에서 그녀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야간자습이 끝나고 교문을 나서서 대동오거리 뻐스정류장으로 오면, 후다닥 맞은편으로 한참을 달렸다가 마주오며, 우연히 만난 것처럼 하며 같이 집으로 오길 일주일이면 두세 번. 처음엔 그러려니 하다가 나중엔 도망가 버리기도 했다.

 

"얌마! 너 그러다 大高 떨어지면 어쩔라구 그러냐?"

"챙피하게 이러지 좀 마라! 내 친구들이 너보구 서방이냔다 이눔아~~~"

"동네에서 쑥덕거린다구 울엄마가 뭐라고 하더라, 제발 먼저 좀 가!!!"

 

뭐, 맨날 구박만 받은 건 아니다. 교문 앞에서 같이 걸어오며 군것질두 하구, 가끔은 시내에서 만나 같이 영화도 봤다. 빵집두 몇 번 갔을건데, 그 좋아하는 빵! 남은 것을 매번 싸들려 보내면서두 하나 아깝지 않았다.

그녀두 집에서 속상한 일이 있으면, 내 앞에서 훌쩍이진 않았지만, 이런저런 속을 털어 놓기두 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었던가. 나중에 대학을 갈 때 꼭 한번 우는 것을 봤다. 내가 봐도 대전에서 썩을 실력이 아닌데, 아줌마가 학비 많이 든다고 서울로 못 가게 했다. 그날 내 기분은 다꾸앙에 꼬량주를 둬병 마신 거였다.

 

덕분으루 얻은 예언대루 난 후기고등학교를 갔고 그녀는 새엄마 펴엉~생 소원대로 忠南大를 갔다. 어쨌든 입학하기 전 두어 週 동안 우린 신나게 돌아 다녔다. 어디를 갔는지 잘 기억나지 않으나 평상시 내가 가자고 조르던 곳을 대부분 가 봤다.

둘 중 하나가 한 20분 먼저 동네를 나선 후, 다른 하나가 약속 장소에서 만나는 재미는 안 해 본 사람들은 모른다, 증말 모른다. 하! 세상이 이리 행복한 것이구나, 처음 느꼈다. 그리곤 그것이 내 행복의 끝이었다. 왜냐면, 왜냐면, 그녀는 대학생, 난 빡빡머리 고삐리.

 

봄이 되자 그녀는 신이 났다. 새로 맞춰 입은 교복에 - 그 당시 유신 때라 그랬나? 우리 때도 교복 입었던 것 같다 - 그것보다 더 안 어울리는 양장에, 단발보다 쬐끔 더 모양나는 머리카락을 날리며, 신이 나 죽겠다는 표정을, 굳이 내 앞에 오면 왜 감췄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그 당시 우리집에 충대놈 몇 놈이 하숙하고 있었는데, 하 이놈들이 연애편지 심부름을 내게 시키는 거다.

"형! 저 여자 내 여자여!"

"웃기구 있네, 얌마, 너랑 잘 안다며? 이거나 얼릉 갖다주고 와라!"

 

그리구 이 일이 두번 있었다.

"오랫만에 영화나 보러 가지?"

"그래, 낼 가자. 몇 시?"

그리곤 이튿날, 교양과정부 앞 개울가 길을 그녀가 오고, 그녀 옆에 웬 놈이 오고, 멍하니 보고 있는 날 보고 지 동생이라고 소개하고는, 내 앞에서 둘이 나란히 간다, 시시덕거리며 간다, 난 뒤 따르고.

이모에게서 받은 용돈 500원으로, 극장비 대가리 당 100원 씩 300원 내고, 남은 200원으로 빵집 가서 내 여자를 위해 그 놈 입에 빵 물리고, 그리곤 '너 먼저 들어가라!' 이 소리를 예수가 못 박히는 아픔으로 가슴에 품고, 터덜터덜...

다음 번엔 다른 놈이랑 나왔다.

 

가을비 추적거리는 날, 감기에 걸려서가 아니라 가슴에 박힌 못이 아파 누워 있는데, 아줌마 -울 엄니- 에게 들었다며, 판피린코프하고 알약 몇 개 사들고 왔다. 나, 처음으로 그날 그녀 때문에 울었다. 아! 이제 포기하자.

 

그러구두 몇 년이 간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 사진은 내가 몰래 훔쳐 왔었는데, 대학교 졸업 사진은 제대로 된 것으로 한 장 가져다 주더군. 아직 앨범에 있는데, 오늘 왜 이리 보구 싶냐. 쉰이 훌쩍 넘었겠군.

그래두, 좋아한 여자 중 유일하게, 딸딸이 칠 때 발가벗겨지지 않은 여자였다.

010 - 5802 - 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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