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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나

가슴에 묻은 사람, 木可川

2011.05.26 18:42

조회 수:470

 

그러고 보니 꼭 33년 前이군, 이 사람을 처음 본 것이.  

학기 初였으니, 지금쯤이려니. 처음 본 소감?  아하, 이 사람도 우리 꽈科 (사람이)군.  딱 그랬지, 더두덜두 말구.  그나마 이름은 며칠 뒤에 알았을 거여.  木可川.

  

어쨌든 가까워 졌어, 친구로.  지금이야 하우스 딸기가 전부지만

그 당시만 해도 5월이나 되어야 노지 딸기가 나왔지.  유성 딸기밭으로 몰려다니고, 지금은 상호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단골 레스토랑에서 하숙생들 하숙비 벗겨 먹고.

여름 방학이 시작 될 때, 신탄진 솔밭으로 놀러 가기로 하고 홍명상가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와서는 같이 가지 못간다고 하더라고.  종혁이 때문이라고.  종혁이가 누구여?  아주 나중에 알았는데, 아마, 시골서 공부만 하다가 대전으로 유학와서 끼끔하게 - 내가 보기에 - 생긴 자식한테 빠졌었나 봐, 1학년 때부터.

  

그거야 내 알 바 아니고, 2학기가 시작되고는 더 친해졌어.  여러 친구들이, 얹혀살고 있던 큰오빠 집에 놀러도 가고.  그래도 여전히 여자로 보이지는 않았어.  그 당시 내게 여자라고는 조여사 뿐이었으니까.

그러던 중, 동문회에서 뭔 주제론가 발표를 할 사람으로 木可川이 뽑혔지.  木可川은 출연을 하고 난 연출을 봤어.  뭔 소리냐구?  둘이서 발표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지.  빈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며칠을 둘이서만 보냈어.  글쎄, 木可川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도 모르는 변화가 있었던 것 같어. 

그동안은 한 번도 의견 충돌이 없이 지냈는데, 조금 티격거렸어.  아무튼 발표를 무사히, 아니지 훌륭히 마치기는 했는데, 둘 사이에 약간 틈이 생겼어.  눈도 잘 마주치지 않고 지냈지.

  

그렇게 지내며 중간고사가 끝났지.  중간고사 끝나는 날, 科 축제가 있었고, 조여사를 꼬셔서 데리고 가는데 실패한 나는 저녁 8시 쯤 동학사로 들어갔어.

10월 초라도 쌀쌀했었어.  동학사 경내엔 아무도 없었지.  지금은 구조가 조금 달라졌는데, 계곡과 등산로에서 대웅전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있었어.  거기에 앉았지.

바람과 도토리 구르는 소리, 그리고 흐르는 계곡물이 전부였어.  속에서는 달랠 필요도 없는 울분이 가득했고.  담배를 피울 때 였지.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뭔가 집히더라구. 

아, 편지!  그날 아침에 학교로 편지가 한 통 왔더라구, 발신인도 없는.  뜯어보고는 누군지 선듯 짐작이 가질 않았는데, 아니지, 실은 조여사 문제로 머리가 꽉 차 있어서 한 번 훑어 보고는 별 생각없이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거지. 가로등 불빛에 비춰가며 다시 읽어 봤어.  아하!  저번 동문회 때 조금 다툼이 있었던 것에 대한 내용이었어.  그것을 아는 사람은 木可川과 나 뿐.

 

아!  木可川 ! 

참 신기하기도 해라!

木可川 편지라는 것을 안 순간 내 안에 있었던 모든 여자들, 내가 좋아한 여자 1부터가 다 방을 비워놓고 나가버렸어.  그리곤 단 한사람만을 위한 방이 마련됐지.

어디 그뿐이랴?  사는 의미와 방향이 정해졌어.  지금까지 늘 태어났다는 것이 짐이었는데 그 생각이 사라져버렸어.  네로 하여 살고, 네를 위해 살리라.  좀 유치한가?  그래도 그 때 생각을 하니 지금도 가슴이 뛰는군.

  

교정엔 낙엽이 수북해 지고 있었지.  그날 이후 학교에 가면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웃고 떠들고 장난치며 보냈었는데,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지.

벤치에 앉아 있는데 옆에 앉더라구.  왜 그러냐구.  뜸을 들이다 말했지, 속리산에 갈까?

  

그 주 일요일 속리산에 갔지.  문장대 쪽으로 오르며 가슴 속에 있는 말을 했어.  좋아한다구.  그에 대해 뭐라 확실한 답을 해 준 것은 없었어.  허긴 조금 일방적으로 건넨 뜻이기에 답변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지. 

산을 내려오니, 科 친구들 몇 명이 버스정류장에 있더라구.  니들 그럴려구 같이 가자고 하니 못 간다고 했구나?  낄낄거리구.

대전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잠이 들었어.  그리곤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지.  난 혹여 잠이 깰세라 꼼짝도 하지 않았어.

 

그때 어깨가 요즘도 아파.  이젠 그 사람을 내려놓았는데도 통증은 여전하군. 

010 - 5802 - 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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