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나
집사람 만난 얘기
2011.05.26 18:46
(051015)
만난 순서로는 다섯 번째지만 좋아한 순서로는 여섯 번째라서 어떻게 순서를 정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연대기가 나을 것 같아 먼저 얘기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야 당연히 결혼까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그저 시간이 나면 가끔 만나 순대에 술 얻어먹고, 다른 이들 쫒아 다니느라 바쁘면 한두 달 씩 연락도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한 2년 동안은 그나마 서로 연락두 없이 지내서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가만 보면 참 그런 소설이 다시 없습니다.
80년 5월 어느 날, 군대 간다고 휴학하고 빈들거리다 친구들과 낚시를 다녀 와 귀가 하던 중, 시내버스에서 낚싯대를 가지고 까불다가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여자 윗옷을 낚았습니다. 바늘을 빼 주느라 한 10여분 실갱이를 하다보니 그러쟎아도 술기운에 벌건 얼굴이 도무지 감당이 안될 정도라서 다음 버스를 타기로 하고 내렸습니다.
다음에 온 버스를 타고 두어 정류장을 지났나, 뭔가 스치는 바람이 있어 고개를 돌려 보니 향순씨가 거기 서 있었습니다. 이게 뭔일이다냐? 하고라~ 어떤 여자에게 채이고 인생 다 산 것처럼 빌빌거리다가 생각지도 않은 사람을 만났으니, 여자 밝히는 제가 오죽 반가웠겠습니까!
나중에 알고 보니 장인어른이 돈을 빌려 준 적이 있었는데, 아마 돈 대신 집으로 돌려받았나 봅니다. 나중 집이 사시던 곳 보다 좀 깨끗하고 동네가 조용하니 이사를 그리로 하신 것인데, 그게 우리집과 같은 문화동이었습니다.
폐일언하고 같이 내렸습니다. 집 앞까지 바래다 주며 그간의 근황을 묻고 햐! 이렇게 다시 만난 것도 인연인데 도로 사귀면서 옛정을 새겨 보자고 꼬드겼습니다.
아니 담 달에 군대가야 하는데, 송별회 해 줄 여자 하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냔 말 입니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달라붙었습니다. 뭐 굳이 그러겠다 싫다 말도 안 했는데, 담 날 정식으로 만나기로 시간, 장소 잡아 버렸습니다.
그렇게 6월 16일까지 근 한 달을, 매일 만나서 밥 먹고 술 마시며, 날 차버리고 간 여자 흉 보고, 당신이 내 구세주라고, 이 거친 세상에서 다리가 되어 달라고, 구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속은 늑대의 심장 그대로 였습니다, 그러니 한번만 같이 자 달라구... 몸은 달아 죽겠는데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었습니다. 쑥맥인지, 아님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건지, 이도저도 아니면 날 싫어하는 건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됐든 그렇게 약 한 달을 매일 만나다 보니 심난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습니다.
제대를 하고는 더 바짝 달려들었습니다. 결혼해 달라구 졸랐습니다. 우리 딸 애는 지금두 지 엄마가 내게 몸 달았었다구 알고 있는데 도대체 뭘 근거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엄연히 증인, 아니 당사자가 고백하는데, 야! 야! 내가 니 엄마헌테 매달려 살았다.
졸업식 즈음에는 우리집이나 친구들이 한 식구처럼 대해 주었습니다. 문제는 처가 쪽이었습니다. 이거 보아하니 성질두 개떡 같은 놈 같으구, 말 들어보니 태생두 썩 훌륭한 것 같지 않구, 벌이두 그렇구...
복사꽃이 고울 때, 하루는 대낮에 쳐 들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딸 내 놓으라구. 뭐라 했는지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지만 장인이 화낼 소리만 골라서 질러 댔을 겝니다.
동네가 시끌벅적했고 그나마 내 편을, 아니 딸 편을 조금씩 들어줬던 장모 심기까지 건들여 놓았던 것 같습니다. 한동안 만나지 못했고, 그러다 몰래 만난 날, 한번은, 아버지에게 맞기까지 했었답니다.
그래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구 겨우겨우 결혼 허락을 받고 일사천리로 진행을 시켜 졸업한 해 초겨울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곤 입때꺼정 고생만 직사게 시키고 있으니, 그런데도 아직 옆에 있어주는 것만도, 황송무지로소이다. 집사람과 사는 얘기는 담에 다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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