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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2011.06.28 03:24 조회 수 : 331

92년 말에 회사를 옮겼다. 

장醬공장 경력이 좀 쌓이니 안산에 있는 회사에서 장부문을 맡아달라고 연락이 왔다.  다니던 회사에 불만이 한참 쌓일 때고 오라는 곳에서의 대우 조건도 상당히 좋았다.  고추장, 된장이야 이제 제법 안다고 자부를 하고 있었으니 얼씨구나 하고 회사를 옮겼다.

 

그 회사는 장류를 생산하여 대기업에 OEM 납품을 하기도 하고, 장류를 1차 가공하여 라면 스프 원료용으로 역시 같은 대기업에 다른 식품소재와 함께 납품을 하고 있었다.  우리네 라면의 스프 기본적인 원료가 고추장, 된장, 간장과 짜장 등에 여러가지를 혼합한 것이다.  더구나 그 대기업에 납품하는 양이 적지 않다보니 시판용 장류보다는 가공용 장류가 더 많이 생산되고 있었다. 

 

직장 생활이나 사업을 하면서 문제가 없다면 어디 그게 직장이고 사업일까?  극락이지.

입사하자마자 골치를 썩이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 회사에서 나를 부른 이유였기도 하다.  시판용 장류의 품질이야 그럭저럭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스프용 장류가 문제였다. 

 

고추장, 된장, 간장, 짜장 등이 스프원료로 쓰이려면 분말화 공정을 거쳐 가루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물에 넣었을 때 바로 풀어지게 하려면 분무건조 공정(SD, Spray Dryer)이 가장 좋은 방법이고 비용도 다른 방법에 비해 덜 들어갔다.  분유 등이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 진다.  문제는 간장을 제외한 고추장, 된장, 짜장의 물성이 우유보다 SD 공정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여러가지 방법으로 애를 쓴 결과가 좋아 고추장과 된장은 어느 수준의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는데 여전히 짜장은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고 남았다.  다른 장류를 날릴 때 - SD 공정을 날린다고 표현 -는 수율 - 투입량과 생산량의 비율 -만이 문제 였는데, 짜장을 날릴 때는 아예 기계를 멈춰 세운다는 것이다.  그 거대한 기계를.  SD 설비는 한 번 가동을 하면 대개 3일 이상을 계속 가동을 해야 수율과 경비 등에서 손실이 나지를 않는데, 아예 기계를 멈춰 세우니, 수율이고 뭐고, 멈춰 선 기계를 청소하고 재가동하는 데까지 엄청난 손실이 발생을 하는 것이다.

 

한 달에 두세 번 짜장을 날리는 열흘 남짓 기간은 그야말로 피가 말랐다.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동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SD 설비 주변을 서성이고 관셈보살 찾고.  그래도 막무가내.  어쩌다 무리없이 돌아가는 때는 그야말로 만신에게 감사를 드리고.  그래도 한 달이면 다섯 번은 사장에게 불려가서 곤욕을 치르고 나온다, 기계가 서든 잘 돌아가든.

"김차장!  뭐, 장 기술자래서 데려왔드만 그 문제 하나 해결을 못하누!"

 

입사를 하고 1년 반쯤 지났다.  도저히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사표를 내야 다른 기술자라도 불러서 해결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사표를 내기 전에 마지막 시도로 SD와 관련된 모든 이들을 모아 회의를 했다.  장 만드는 사람들, SD 설비 담당자들, 공무과 직원들, 연구소 연구원들까지 모두 이십여 명이 모였다.

 

"오늘, 우리 짜장 뿌리를 뽑읍시다.  뿌리를 뽑기 전엔 나갈 생각들 마시고.  짜장과 SD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전연 상관이 없는 것이라도 좋으니 아무 의견이나 제시를 하십시오."

우리네 회의라는 것이 늘 그렇다.  말하는 사람 정해져 있고 나머지는 별로 관심도 없고.  그래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에 대해서 얘기를 해 줬다.   

 

미국에서 처음 송전탑을 세워 전기를 동부에서 서부로 보내는데 사막을 가로지르게 됐다.  그런데 문제가 있는 것이 사막의 날씨였다.  낮엔 엄청 뜨겁지만 밤이면 영하로 기온이 내려가는 것이다.  더구나 겨울철에 들어서면 전선에 얼음덩이가 생겨서 전기송전율이 뚜욱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래 그 전기회사에서도 오늘 우리 처럼 회의를 열었다.  아무 의견이나 내 달라구.

얼음덩이를 떨어뜨려야 하면 장대로 전깃줄을 툭툭치면 되겠네, 큭큭.

전선에 코일을 감아서 열을 주자.  녹은 물이 도로 얼려나.  그 물을 떨어뜨려야 하겠군.

차라리 헬리콥터를 누워서 지나가게 하지.  바로 날아야 될려나.

오줌 누고나서 온몸을 떨듯이 송전탑이 떨어주면 좋은데.  그게 어디 몸만 떨어서 되나 손도 떨어야지, 큭.

그렇게 말이 되든 안되든 갖은 의견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가만히 나온 의견들을 들여다 보니 얼음덩이를 제거해야 한다는 목적에 적합한 의견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지 송전선을 흔들어 물방울과 얼음덩어리를 떨어뜨리는 것!

그 전기 회사가 택한 방법은?

송전탑에 진동기를 부착해 줬다.  그리고는 수분이 전깃줄에 맺히는 싯점과 그래도 얼음덩이가 생기는 싯점에 각 송전탑에 부착된 진동기를 일제히 기동하는 것이다, 부르르!  부르르!  부르르!

 

처음엔 뭔 소리를 하나 하더니, 브레인스토밍 기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평상시 회사일에 별로 관심도 없던 직원들까지 자기가 느낀 점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고추장은 참 잘 날리지.  된장두.

그건 내가 고추장, 된장을 잘 만들어서 그런 겨.  아니 그럼 내가 짜장을 잘 못 만들었단 말여!

자자,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은 좋은데 남 잘못은 꺼내지 말아야 혀.

예전엔 고추장하구 된장두 시간 당 200키로 밖엔 안 나왔는디 지금은 거의 1톤이 나와.

에헤, 겨우?  캬라멜은 거의 쏟아져, 한 5톤?

짜장 만드는 사람은 말도 못 꺼내고 있다가 혼자 중얼거린다.  짜장이 뭐 별건가, 된장하구 캬라멜 섞은 것인디...

그러네, 짜장만 속을 썩히지, 짜장의 원료라 할 수 있는 된장과 캬라멜은 전연 걱정이 안되네!

된장이 얼마?  1톤!  캬라멜은? 5톤!  근디 짜장은 대여섯 시간 돌다가 떡이 되서 기계를 세운단 말여!  참 이상타!

SD 설비 기사가 짜장 만드는 이에게 묻는다.  짜장을 어떻게 만든다구?

된장과 캬라멜을 섞어서 열을 준 다음에 갈아내면 짜장여.     

연구원이 그런다, 잠깐만!  결국은 짜장이라는 것이 된장 입자에 캬라멜 입자가 입혀진 건데!

공무과 직원이 짝! 손뼉을 친다.  된장 마르는 속도와 캬라멜 마르는 속도에 엄청난 차이가 있네!  캬라멜이 엄청 빨리 마르네!

그랬다.  된장도 잘 날리고 캬라멜도 잘 날리는 데, 그 둘을 섞은 짜장이 엉망였던 이유는, 짜장 입자 외부의 캬라멜이 너무 빨리 마르는 바람에 내부의 된장 입자는 채 마르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지게 되고, 바닥을 긁어서 분말을 밀어내는 과정에서 짜장 입자가 터지면서 덜마른 된장입자들이 도로 습기를 내뿜고, 가동 시작 후 열시간도 되기 전에 뭉쳐진 떡이 되어 그 거대한 기계를 세웠던 것이다.

 

원인을 알았으니 처방이야 간단할 수 밖에.

전에는 SD용 짜장을 만들자 마자 바로 SD실로 보냈는데, 최소한 일주일에서 보름 동안의 후숙기간을 설정하여 된장 입자와 캬라멜 입자가 충분히 혼화될 수 있게 했고, 수요가 딸려서 급히 공급을 해 줘야 할 때는 만들어진 짜장을 2, 3회 다시 믹싱을 해서 입자를 아주 곱게 만들어 보내주었다.

 

그래 그 뒤로 잘 버티며 지냈냐구?  크크, 낼 모르는 소리를 허고 있네.

요즘 하도 그지같은 말만 지껄였길래 그냥 끄적거려 봤다.   

 

브레인 스토밍에는
다음의 4가지 규칙이 있단다.
1. 다른 사람의 발언을 비판하지 않는다.
2. 자유분방한 발언을 환영한다. 몽상도 좋다.
3. 질보다 양을 중요하게 여긴다.
4.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에 무임승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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