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哲雨武林

서글픈 해후邂逅 1

2021.07.14 11:57

소금장 조회 수:1

개봉 북쪽 황하 바로 옆에 축수지라는 제법 너른 호수가 있는데, 성내의 포공호와 양가호를 합친 것보다 컸다. 이 호수는 황하와 연결되는 인황운하에 물을 대주는 역활도 하고 있는데, 황하의 물이 조금만 불어나도 수위가 높아졌다. 따라서 황하와 나란히 펼쳐진 호수변 평지는, 마을은 물론 제대로 된 농사조차 지을 수 없어, 무인지대였다.

 

그곳에 한 인영이 눈에 띄었다.

몸을 분주히 놀리는데, 주위에는 송아지만 한 개 한 마리가 뛰놀고 있었다.

“자단! 그렇게 밭을 망가뜨리면 어떡해! 가만히 안 있을래?”

여자 목소리다.

그러고 보니, 여자는 밭일을 하고 있었다.

 

“물 차기 전에 네놈이 밭을 다 망치겠다! 계속 그러면 묶어놓는다!”

개가 말을 알아들었는지 일순 멈칫하더니, 다시 밭을 헝클기 시작했다.

“이놈이!”

여자가 몸을 일으키자 개가 도망가기 시작하고, 여자는 뒤를 쫓았다.

아마도 개는 주인이 놀아주지 않고 밭일만 하니, 심술이 났었나 보다.

그런데 도망가는 개와 쫓는 여자의 달리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까마득히 먼 곳에서 두 점이 빠르게 움직인 지도 벌써 이 각이 넘는다.

해는 어느덧 항하의 상류 쪽으로 서서히 기울고 있다.

철우는 자신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것도 잊고, 두 점이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있었다.

 

“자단~! 그만 가자! 네 놈 때문에 뛰었더니 배가 빨리 고파졌어. 가자, 맛있는 것 해 줄께…”

여자와 개는 뛰기를 멈추고 호숫가의 숲으로 걸어갔다.

여자와 개가 닿은 곳은 얼핏 보면 마른 땅 같았는데, 자세히 보면 상당히 커다란 뗏목이었다

그 뗏목 위에 사합원 형태의 집이 제대로 지어져 있다.

대문은 없지만, 가림벽 뒤 양편으로 각각의 사랑채, 가운데에는 정원, 그리고 그 뒤로 본채가 있다.

이윽고 본채에 딸린 부엌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달이 없는 밤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팔을 베고 누운 철우의 눈에, 유성이 띄엄띄엄 흘렀다.

그때마다 난마처럼 얽히던 생각이 끊어지곤 한다.

“후우~”

긴 한숨 끝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잠시 후 철우가 몸을 일으켰다.

 

“사형!”

“들어가 보지 그러냐?”

“…”

“괜찮아. 이미 십사 년 전에 끝난 일이잖냐…”

“사형…”

“…”

두 사형제는 한동안 말없이, 멀리 떨어져 어둠에 깊게 잠겨 있는 집을 보았다.

 

류석보가 철우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 녀석과 잘 지내라, 싸우지 말고…”

그러더니 입술을 말아 아주 고음의 휘파람을 불었다.

일반인의 귀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의어전성의 수법이었다.

‘크엉!’

멀리서 짖는 소리가 딱 한번 울리고, 동시에 집에서 불이 켜졌다.

이윽고 낮의 그 개가 나타났다.

 

‘크르르르~’

개가 철우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자단! 자단! 이리 와!”

개가 꼬리를 내리고 류석보에게 안겼다.

“이놈 어떠냐?”

“좋은 종이네요.”

“삼 년 전에 표행에서 돌아오다 투견장에서 구해 왔지.”

 

그렇게 개와 두 사람이 섞여 시간을 보내는 사이, 가림벽 뒤에서 뿌옇게 발하던 빛이 꺼졌다.

철우가 후욱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난 간다. 제갈 소저가 굉장히 궁금한가 보더라. 너무 깊게 생각 마라, 네가 죄 지은 것도 아니잖냐!”

그러면서 개 등을 두드리며 철우 쪽으로 밀었다.

“자단! 네 형이다! 잘 지내 이놈아…”

류석보가 가자, 자단이 철우 주위를 한 바퀴 돌더니 집을 향해 뛰었다.

철우는 도로 자리에 누웠다.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아주 약한 소리, 개가 뛰어오고 있다.

아주 약한 소리, 사람이 걷는 소리.

개가 옆에 와서 끙끙댄다.

철우는 눈을 뜨지 않고 팔을 뻗어 개를 쓰다듬었다.

개가 철우 곁에 앞다리를 뻗고 앉았다.

개의 심장 뛰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다.

철우의 심장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눈을 떠야하는데…

발걸음이 가까워졌다.

눈을 떠야지!

여전히 무창에 숨어 있었다면 모를까, 눈을 떠…

무섭다.

발걸음이 멈췄다.

 

시간이 멈춘 듯하다.

한참 후.

“사형!”

철우가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일어섰다.

쳐다봤다.

철우가 여자를 끌어안았다.

여자가 철우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크흑~!”

울음이 한참 이어졌다.

 

철우가 두 손으로 여자의 얼굴을 잡고 찬찬히 들여다봤다.

짙은 어둠이라도 철우의 눈에, 이리 가까운데, 얼굴이 자세히 안 보일 리가 없다.

십사 년 전의 그 모습.

다행인 것은 턱부터 입술, 눈, 이마를 갈랐던 혈선은 흉터가 살짝 일어나긴 했으나, 많이 희미해져 있었다.

다만, 떨어져 나간 코 부위에는, 덩그마니 구멍만 두 개가 뚫려있다.

철우는 여자의 볼에 자신의 얼굴을 부볐다.

“사매…”

 

십사 년 전 비무 때의 사고 후, 오현문에서 일 차 치료를 마친 채진은 사부인 강진혁, 철우와 함께 개봉의 본가인 채가장으로 돌아왔었다.

채가장은 누대에 걸쳐 개봉에 뿌리를 내린 상가로, 하남성 일대의 비단을 거래하였는데, 특히 채가장에서 취급하는 천잠사는 중원 각지에서 탐을 낼 정도로 고급품이었다.

천잠사는 양잠사보다 질기기는 세 배나 질겼고, 천잠사로 짠 옷감은 수명이 다섯 배는 오래 갔으며, 광택 또한 양잠에 비길 바가 아니어서, 부르는 게 값이었다.

 

채가장이 상가임에도 무창 오현문과 인연이 있었던 것은, 당대의 채가장주 채위정이 어려서 소림 속가로 들어가 공부할 때, 철우의 사조 등소림과 동문수학을 했기 때문이다.

채위정은 손녀인 채진을 소림 보다는 속가인 오현문에 보내 수학하게 했었다.

 

잠시 후 채진은 철우의 품에서 벗어났다.

“큰 사형으로부터 사형의 얘기는 들었어요. 찾아와 줘서 고마워요.”

“일찍 왔어야 하는데…”

“아니예요. 사형에게 부담을 줄 이유도 없고…”

“사매!”

“이렇게라도 봤으니 됐어요. 저는 보시다시피, 본가와 대통표국의 보살핌 속에, 아무런 부족함 없이 지내고 있어요. 큰 사형께도 말씀드렸는데…”

“…”

“오시지 않아도 된다고…”

 

두 사람은 그 뒤 한참을 말없이 서로를 보고만 있었다.

“사..!”

채진이 철우의 말을 끊었다.

“사형! 그만 돌아가세요. 편케 사형의 길을 가세요. 저는 이대로가 좋아요.”

그러면서 채진은 주위를 빙빙 도는 자단을 불렀다.

“자단! 그만 들어가자!”

채진은 철우에게 읍을 한 후,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철우는 한참을 서서, 채진의 모습이 가림벽 뒤로 사라지고, 불빛이 잠시 비쳤다 꺼지는 것을 지켜 보았다.

 

“사숙께 인사 올립니다.”

“그래, 얼굴 본 것이 대체 얼마 만이냐! 너도 이제… 쯧쯧!”

“죄송합니다.”

“나보다 네 사부가 속을 썩었지.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된 일이더냐?”

철우는 그간의 사정을 간략히 얘기했다.

 

대통표국주 상찬명이 철우를 보며 얘길했다.

“그런데 개방의 용두방주가 네 무위에 대해서…”

“제 솜씨야 스무 살 적 그대로 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하루 십이 시진 대부분을 적공에 힘 쓰다 보니…”

“십이 시진을!”

“예.”

 

철우의 사형인 대통표국의 대표두인 류석보가 놀란 표정으로 철우를 다시 봤다.

류석보는 철우가 창안한 장강천류를 십 성까지 익혀, 몇 년만 더 연마를 하면 절정의 솜씨를 보일 수 있지만, 대통표국의 대소사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어, 따로 수련을 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그래서 사부께서 너를 그리도 칭찬을 하셨는가 보구나! 허참!”

육십 년 적공이라고 해도 하루에 한 시진, 고작해야 두 시진을 넘기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십사 년 동안 매일, 열 시진 만 계산을 해도 이 갑자 공력은 가볍게 뛰어 넘는다.

 

놀랍다는 얼굴을 갈무리한 류석보가 물었다.

“우선 단목세가 문제를 어쩔 셈이냐?”

철우가 사숙과 사형을 번갈아 봤다.

“길이 있으면 그 길로 가고, 없으면 만들면서 가겠습니다.”

두 사람이 눈을 깜박이며 철우를 봤다.

“운명에 따르겠습니다.”

“허어~”

“철우야!”

 

“오라버니!”

철우가 두 사람을 따라 안채로 오니, 류석보의 아내와 함께 아침을 준비하던 제갈려려가 반갑게 맞았다.

철우는 려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인사를 하였다.

“형수님! 처음 뵙겠습니다.”

“호호호, 반가워요. 애 아빠를 매일 두들겨 패던 사제라고 하던데,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데요?”

“예?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래,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아닙니다, 숙모님. 한참 동안 인사도 못 드리고, 죄송합니다.”

철우는 사숙의 부인인 대통표국 안주인의 방에 와 있었다.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제갈 소저가 참 맘에 들더구나. 소저의 고향이 호광 양양이라고 하던데, 한번 들러야 하지 않겠느냐?”

“예. 해야 할 일을 마치면 다녀오려고 합니다.”

“일? 예서 네 사형과 같이 표국일을 돕지 그러느냐?”

“…”

“철우야! 너 진이 때문에 그러느냐?”

철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효찬이와 상옥인?”

“둘이 한바탕 하러 갔어요. 아침 먹으러 올 시간예요.”

“좀 더 체계적으로 가르쳐야겠는데, 검 외에는 려려가 신경 좀 써 줘.”

“그럴 생각예요. 그런데 상옥이가 재주가 있죠?”

“일찍 시작했더라면 지금쯤 반 조장 수준은 올라섰을 거야.”

“효찬이는 어떻게 하죠?”

“사형께 부탁하려고, 여기서 자리를 잡게. 상옥인, 려려가 물어 봐 줘,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알겠어요.”

“그리고…”

철우가 말을 멈추고 려려를 봤다.

 

“무슨 말씀이든지 하세요. 무슨 일인지 몰라도, 제게 상의는 하지 않으셔도 돼요. 다만, 저도 함께 하게 해 주세요요. 이제는 혼자 있고 싶지 않아요.”

철우가 다가가 려려의 손을 잡았다.

“며칠 뒤 같이 갈 곳이 있는데, 그동안 알아봐야 할 일이 있어 좀 바쁘겠어. 아이들과 좀 지내고 있어야겠네.”

“알겠어요.”

 

“채가장주가 손녀를 위해서 만금인들 아까워 했겠느냐? 일 년 반을 제대로 넘기는 기술이 없더구나.”

“그래서 제가 찾아보려 합니다.”

“보통의 인피면구가 아니고 모양을 만들어 얼굴에 붙여야 하는데, 호광, 하남, 북직례에서는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

“혹시 무불통지로 알려진 인물을 알고 계신지요?”

“그런 사람이 몇 있기는 한데, 가까운 곳에는 없구나. 제일 가까운 곳이라야… 가만!”

철우가 눈을 빛내며 사숙을 봤다.

“혹시 당가는 어떨까?”

“사천의 당문 말씀이십니까?”

 

고금의 무림사에서 사천의 당문은 늘 조금 특이한 위치에 있었다.

무림에서 유난히 따지는 정과 사의 구분에서, 딱히 자리매김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사에서 모두 배척 당하거나 아니면 끝없이 구애를 받았다.

그것은 그들이 지닌 재간이 독과 암기라는 것 때문이었고, 또한 그들의 의술과 손기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해서 이기도 했다.

또한 그것은 정과 사의 무리들 모두, 자기들 욕심에 맞춰 당문을 대해서 생긴 결과였다.

 

“그래서 사천으로 가겠다고?”

“예.”

“제갈 소저와 상옥인 알겠는데, 진이를?”

“…”

“채가장에서야 지원을 하겠지만 정작 당사자인 진이가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가 없구나.”

“그래서 사형께 부탁드리는 겁니다.”

“흐음… 알겠다. 그런데 진이에 대한 네 생각은 정확히 어떤 것이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단지 책임뿐이냐?”

 

“소저가 어떻게 생각하실지 조심스럽군요.”

“오라버니에게 자세한 얘기는 들었어요. 그리고 저도 오라버니 생각과 같구요.”

“책임져야 한다?”

“예.”

류석보는 채진을 만나러 가는 길에, 제갈려려에게 동행을 청했다.

두 마리 말은 사람들의 복잡한 생각은 아랑곳없이, 그저 머리를 끄덕이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고 있다.

 

“진이를 만나러 가는데 소저를 청한 이유가, 바로 그 책임 때문입니다.”

제갈려려의 고개가 류석보를 향했다.

“이번에 단목가와 생긴 문제라든가, 아니면 철우가 담가촌 젊은이들을 맡게 된 책임같은 것은, 어떤 일에 대한 것이라 풀어내기가 단순하죠.”

말을 끊고, 류석보는 하늘을 한번 올려본 후 제갈려려를 봤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책임이라는 것은, 감정이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남자가 여자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

제갈려려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 무슨 말인지 안다는 표시를 했다.

“나는 진이에게, 사천까지 동행할 것인가만 물으려 합니다. 다른 부분은…”

“예, 알겠어요.”

 

말발굽 소리를 들었는지 멀리서 자단이 쏜살같이 달려오며 짖었다.

말들이 놀라 멈칫거리자 두 사람은 말에서 내려 고삐를 잡고 걸었다.

“어머! 개가 송아지만 하네요!”

“말썽꾸러기지만 진이하고는 둘도 없이 지내더군요.”

자단은 그 큰 덩치를 박차올라 류석보에게 달려들었다.

“야! 야! 이러지 마~”

 

정원에서 꽃과 나무들을 손질하던 채진은, 자단이 벌떡 일어나서 달려나가는 것을 보고, 방으로 들어가 옷을 차려입고 나왔다.

밖으로 나와 보니 자단은 벌써 사형에게 다가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재롱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사형은 결혼 후 딱 한번, 새언니를 소개시켜 주려 함께 온 뒤, 여직 여자를 데려온 적이 없었다.

멀리서 봐도 자태가 뛰어나다.

‘아!’

여자의 직감!

어젯 밤, 생각지도 않았던 철우의 방문 뒤 생긴 이상한 감정에, 불이 붙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야… 난, 아니야!’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가볍게 털어내고 손님들을 향했다.

 

제갈려려가 어리광을 부리는 개에게서 눈을 떼어 보니, 저 멀리 한 사람이 오고 있다.

아직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날렵한 몸매에 엷은 홍의를 걸쳤다.

걸음걸이가 반듯한 것으로 보아 상당한 수련을 했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윽고 다가선 모습…

머리에 작은 전모를 썼는데, 전모에 검정 너울을 어깨까지 내리고 눈 부문만 틔워 놓았다.

한쪽 눈에 희미하지만 분명한 상처가 보였는데, 그 상흔이 시원한 눈매를 가리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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