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哲雨武林

서글픈 해후 2

2021.07.14 14:04

소금장 조회 수:1

“사형…”

채진은 류석보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어제는 왜 그냥 가셨어요?”

“네가 잠든 것 같더구나…”

“칫! 거짓말도 하시고… 순천부 표행 일은…?”

“관수품이 모두 도착하질 않아 하루 이틀 미뤄지고 있어, 사흘 뒤에나 출발할 것 같네...”

그러면서 류석보는 곁에 있는 제갈려려를 소개했다.

 

“이 분은 철우와 같이 오셨어, 인사해라…”

제갈려려가 먼저 예를 하며 인사를 했다.

“제갈려려예요.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제갈려려는 제법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어서오세요, 채진입니다. 들어가시죠.”

두 사람을 안내하는 채진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갈려려 혼자만의 느낌이었을까?

 

채진의 집은 황하의 물이 불거나 줄었을 때를 대비하여 뗏목 위에 사합원 형태의 집을 짓고, 그 뗏목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고정을 시켜 놓은 형태였다. 비록 십여 년이 지나 조금은 낡은 곳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생활하는 데 아무런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채가장에서 많은 은자를 들여 지은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을 사랑채로 들인 후 채진은 본채로 들어가 다과를 준비했다.

십사 년 전, 그 당시에는 철우에게 야릇한 감정이 있었지만, 나이 어린 치기에서였다.

사고 후 망가진 얼굴로 십수 년을 지내는 동안, 그런 감정은 봄볕에 눈 녹듯 녹아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그런데 참 새삼스럽다.

‘사형의 여자라는 것은 알겠는데, 왜 여길…’

채진은 마음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사형에겐 차보다 술이 어울리는데…”

“무슨 소리야? 나도 제법 풍류를 즐기는 놈이라구!”

“술 주정도 풍류의 일종이죠…”

“너, 너! 제수씨에게 내 인상을 꺼멓게 먹칠하려고 작정을 했구나!”

채진이 류석보를 봤다.

류석보도 채진을 봤다.

채진의 눈에 얼핏 서러움이 스쳤다.

제갈려려는 두 사람이 가볍게 말을 주고 받는 동안 마치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어서,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험! 험!”

류석보의 마른 기침과 동시에 채진이 물었다.

“사형이 표행 떠난다고 기별하러 오시진 않으셨을 테고, 무슨 일로 바쁜 걸음을 하셨어요?”

“철우가… 사천 당문을 가겠다는구나.”

“당문요?”

“그게… 채가장 어르신이 몇 번 시도하셨던…”

“아…! 됐어요, 이젠...”

그러면서 찻잔을 집어 드는데, 손이 떨리고 있었다.

 

채가장에서는 여러 번 채진의 얼굴 모습을 되살리려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하였다. 상흔은 그나마 뛰어난 의술을 가진 사람들이 달려들어 흉터를 줄이는 데 성공을 했으나, 잘려나가 구멍만 두 개가 뻥하니 뚫려있는 코가 문제였다.

솜씨 좋은 장인匠人이 있다고 하면, 근원과 비용을 따지지 않고, 코가 제대로 서 있는 면구를 만들려 했으나, 번번히 실패를 했다.

 

채진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채진이 제갈려려를 봤다.

제갈려려가 가볍게 웃어주었다.

채진이 팔을 들어, 너울을 전모 위로 완전히 들어 올렸다.

채진의 얼굴이 드러났다.

제갈려려의 숨이 멎었다.

 

자신도 칼밥을 먹고 있으니, 얼굴이나 몸 이곳저곳에 상처나 흉터가 있는 것을 심심찮게 봐 왔지만, 신체의 일부가, 그것도 얼굴 복판에 있는…

더구나 여자의 얼굴은 여자의 목숨과도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제살려려의 가슴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이래서 오라버니가…’

비로소 철우가 어떠한 마음이었을까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철우에게 온 마음을 기대었듯이, 철우도 이 여인에게서 마음을 떼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제갈려려가 일어나 마주 앉은 채진의 두 손을 그러모아 잡았다.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채진이 제갈려려에게 작은 미소를 보인 후, 손을 살며시 빼내며 류석보에게 말했다.

“사형은 여직, 제 얘기를 작은 사형에게 한 번도 전하지 않으셨군요!”

“사매!”

“제 얼굴이 이렇게 된 것은 작은 사형 탓이 아니고, 제 운명일 뿐예요. 그리고 이런 제 얼굴을, 자단은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봐요. 이제 오지 마세요. 사형도 작은 사형도 자단의 눈길처럼 그렇게 무심해지시면 그때 오세요. 표국의 도움이 없어도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내가 지닌 무위면 내 한 몸 지키는 것은 일도 아녜요. 그만 돌아가세요.”

“사매! 진아!”

채진이 몸을 일으켰다.

“제갈 소저, 볼 수 있어 다행이었어요. 안녕히 가세요.”

채진이 일어나 먼저 사랑채에서 나갔다.

“진아! 진아!”

 

“제가 따라오지 말 걸 그랬나 봐요…”

“아닙니다, 제수씨. 사매는 철우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이제 어쩌죠?”

“글쎄요…”

더 설득해도 결과가 뻔한 것이, 채진은 더 이상 얼굴 생김에 연연해 하지 않는 것이 역력했다.

표국으로 돌아가는 두 사람의 심정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나저나 사매는, 하필이면 개 마음을…”

사람 마음이 어찌 개와 같기를 바란단 말인가.

그때였다.

말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제갈려려가, 무엇인가 생각난 듯 말을 세웠다.

“아주버니, 먼저 가시겠어요?”

류석보가 무슨 말인가 하고 제갈려려를 보았다.

“저 혼자 언니 좀…”

‘언니!’

“사매가 어떻게 나올지…”

“제게 생각이 있어서요. 그리고 말은…”

제갈려려가 말에서 내리더니 고삐를 류석보에게 건넸다.

 

“혹시 건포 가지고 있으세요?”

“예. 드릴까요?”

“자단이 하고 친해질려구요.”

“예? 아…”

표사들이 늘 챙겨 가지고 다니는 것이 건량과 식수였다.

 

제갈려려가 오던 길을 돌아 다시 채진의 집 쪽으로 걸어갔다.

멀리서 채진의 집이 보일쯤, 점 하나가 빠르게 다가오더니 점점 커졌다.

자단이었다.

자단이 다시 보아 반갑다는 듯 꼬리를 흔들자, 제갈려려가 건포를 던져 주었다.

건포를 다 먹은 자단이, 마치 오래 같이 지냈던 것처럼 제갈려려에게 장난을 걸었다.

“자단이라고 했지! 자 이제부터 내가 니 작은 엄마다! 큰 엄마에게 하듯이 해야 해!”

자단이 무슨 말을 하는 제갈려려를 쳐다보더니,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채진이 두 사람을 보내고, 정원에서 심난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곁에 앉아 있던 자단이 벌떡 일어나 뛰어 나갔다.

“자단! 자단!”

채진이 뒤따라 나갔다.

멀리 사람이 보인다.

아까 그 여자다.

‘제갈려려…’

 

자단과 제갈려려가 잠시 멈춰 서 있더니, 갑자기 자단과 제갈려려가 뛰기 시작했다.

아마 자단이 자신과 같이 장난치던 것이 생각나, 먼저 달리기 시작했나 보다.

“그런데 쟤가…”

뒤를 따르는 제갈려려의 경공 실력이 제법인 것이 자단에 조금도 뒤지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채진 자신도 그렇게 달리면 얼마 가지 않아 헉헉거리기 마련인데 쉬임이 없다.

그런데 저 여자…

말도 보이지 않는다.

“뭐야…”

 

벌써 이 각이 넘는 동안 달리고 있는 것을, 채진이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다.

이윽고 둘이 달리기를 멈췄다.

‘저 여자… 무슨 생각으로…’

그런데 자단이 이상하다.

채가장과 대통표국에서 늘 오던 사람들이 아니면, 채진의 집 주변으로 작은 짐승조차 다가서는 것을 경계하곤 했는데, 어제 작은 사형에게나 저 여자에겐 스스럼없이 대하고 있다.

 

조금 쉰 후 제갈려려가 일어났다.

이번에는 제갈려려가 먼저 뛰기 시작했다.

자단이 신난다는 듯 짖으며 뒤를 쫓았다.

 

벌써 해가 지고 있는데, 자단은 돌아올 생각이 없나 보다.

달리고 쉬고를 몇 번째인지 모른다.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여자도 자단도 무엇에 홀린 듯 달리고 달렸다.

땅바닥에 앉아 지켜만 보던 채진이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금 후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제갈려려는 땅바닥에 앉아서 자단과 자신의 달리기를 지켜보던 채진이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자, 달리기를 멈추고 숨을 골랐다.

자단이 옆으로 와 숨을 헐떡였다.

제갈려려가 자단의 등을 두드려 주고 있는데, 연기가 보였다.

“후우~!”

제갈려려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그래서 사형 혼자 오셨어요?”

“내가 계속 설득한다 해서 마음을 돌릴 것 같지도 않고…”

“려려에게 무슨 생각이 있겠죠.”

“제수씨가 생각이 깊은 사람이더구나.”

“예. 그래도 쉽지는 않을 건데…”

“사부님! 제가 가 볼까요?”

곁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상옥이 나섰다.

“아니다. 너는 형수님에게 가서 길 떠날 준비를 하거라.”

 

“자단! 밥 먹어야지!”

채진이 부르는 소리에 자단이 힘껏 뛰어 왔다.

“야, 임마! 혼자 오면 어떡해!”

그 소리를 듣고, 제갈려려가 환하게 웃으며 자단의 뒤를 따라 뛰었다.

 

“언니…”

채진은 너울을 쓰고 있지 않았다.

제갈려려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자단인 날 보고 울지 않아…”

제갈려려가 얼른 맨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웃음을 지었다.

“마음 써 줘 고마워. 들어가자…”

채진이 제갈려려의 눈물 묻은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갔다.

 

류석보가 순천부로 표행을 출발시켰다.

“국주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맹에도 이미 소문이 들어갔을테니, 네가 가면 사형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 게다.”

“예. 처리가 시급하면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그러거라.”

 

“효찬아! 처음 나가는 표행이니, 매사 배운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옙!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래… 함께 일 하시는 분들에게도 성심을 다 하고…”

“예.”

 

효찬이 상옥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상옥아! 사부님 잘 모시고 다녀와!”

“얌마! 이제 장가 들 일만 남었구나! 축하한다!”

상옥이 효찬에게 한마디 거들었다.

 

표행이 출발한 오후에, 이두 마차 한 대가 표국으로 들어섰다.

그 이두 마차가 채가장에서 대통표국에 이르는 동안, 길가의 개봉 사람들에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마부는 개봉에서 아는 사람은 모두 알만한, 채가장주 채위정이었다.

말 한 필은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백마였고, 다른 한 필 역시 흰점 하나 눈에 띄지 않는 흑마였다.

두 마리 말 모두 여진에서 들여온 군마로, 은자가 많다고 하여 구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마차 뒤에는 채위정의 아들인 채혁이 백마를 타고 따랐다.

 

표국의 입구에는 상 국주와 철우, 제갈려려, 상옥이 나와 있었다.

“장주님! 오랫만에 오셨습니다!”

“국주! 사업은 어떠시오?”

“늘 장주님 덕을 보고 있습니다. 채 형도 오랜만이오!”

“이런 일 아니래도 자주 좀 봅시다~”

“자자! 안으로 들어가시죠.”

 

“두 분 어르신께 인사올립니다…”

채 씨 두 사람에게 철우가 깊게 허리를 숙여 예를 올렸다.

곁에 있던 제갈려려와 상옥도 덩달아 허리를 숙였다.

“이게 얼마 만인가? 하마 십사 년…? 자네도 많이 변했군…”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게 뭐 있나. 그렇지만 자네가 나서겠다니… 이리 와 마차를 받게!”

채위정이 어자대 - 마차를 부리는 사람이 앉는 자리 -에서 일어나, 쥐고 있던 고삐와 채찍을 철우에게 내밀었다.

철우가 어자대로 올라 고삐와 채찍을 쥐었다.

 

채위정이 땅으로 내려와 철우에게 말했다.

“백마는 기백이 뛰어나 한 길로만 달리려 하고, 흑마는 욕망에 따라 길을 선택한다네. 이럴 때 마부는 어찌해야 하겠는가?”

모든 사람들이 채위정의 느닷없는 질문에 놀랐다.

철우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부는 이성을 지켜야 합니다.”

“으하하하하~”

“아버님!”

대소를 터뜨리느라 몸을 휘청하는 채위정에 놀란 채혁이, 얼른 자신의 아버지를 부축했다.

 

“채가장의 모든 역량을 자네에게 주겠네. 내 손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철우! 자네의 답변에 만족해서 하는 소리네. 당문에 따로 기별을 넣어 놓겠네.”

“어르신…”

“아비야 가자! 국주! 언제 채가장에 들르시오~”

“장주님! 안에 들으셔서…”

“아니오. 손녀 일이 아니고, 따로 한 번 들르리다.”

그러면서 휘적휘적 온 길을 되돌아 갔다.

 

채혁이 철우를 보며 말했다.

“마차 안에 필요한 것을 모두 갖춰 놓았네. 말도 그렇고, 마차 역시 군용이라 웬만해서는 고장나거나 쉽게 망가지지 않아, 사천의 험한 길도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네. 딸 아이 좀 잘 부탁하네.”

“예.”

“국주! 나 가오! 또 봅시다”

채혁이 말의 고삐를 잡고 아버지의 뒤를 따라 걸었다.

“어허 참… 술은 말고 차라도…”

상 국주가 아쉬운 표정으로 채 씨 부자를 보냈다.

 

사흘 뒤, 채진의 집 앞 너른 벌판으로 이두 마차가 들어섰다.

자단이 어느새 뛰어와 마차와 나란히 걸었다.

“사부님! 이제 몰만 하세요?”

“네가 보기엔 어떠냐?”

“헤~ 말이 좋아서지, 사부님 솜씨는 아녜요…”

“뭐라고! 이런…”

“호호호~”

“깔깔깔~”

마차 안에서 어자대로 뚫린 창에 매달린, 제갈려려와 상옥이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 저기 언니가 나와 있어요.”

제갈려려와 상옥이 마차에서 내려 채진에게 다가갔다.

채진은 너울을 쓰고 있었는데, 제갈려려가 보니 처음 볼 때의 너울보다 안이 더 비쳐 보였다.

 

“언니~!”

“안녕하세요~!”

채진은 제갈려려와 상옥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네가 상옥이구나.”

“엡! 앞으로 뭐 시키실 일은, 막내가 모두 맡겠습니다!”

“이런… 그래, 고맙구나. 자 들어가자.”

 

이틀 뒤, 철우가 모는 흑백 마차에, 세 여인과 자단이 타고 있었다.

철우가 오현문에서 쫒겨난 지 일 년 반이 지난, 오 월의 황하 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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