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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나

내가 좋아한 여자 3, 喜子

2011.05.26 18:39

조회 수:731

 

고등학교 2학년 때인 74년에 우리 동네엔 버스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충대 앞 큰길에서 내려 동네까지 들어오려면 빨리 걸어도 10분, 드라이진 찔끔거리며 들어서면 30분도 넘게 걸렸다. 그러던 중 대륙관광에서, 신탄진에서 우리 동네 위에 있는 방죽까지 시내 노선을 운행하기 시작 했다. 동네 사람들 중 할일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30분도 넘게 기다리다가 이 버스를 타고 들어오곤 했다. 나도 은행동에서 죽치다가 집에 올 때면 이 버스를 한도 없이 기다렸다.

 

근데 말이다! 나 말고 또 한사람이 이 버스를 애용하는 거라. 첨엔 몰랐는데 몇 번을 같이 내리게 되니 자연 눈에 띄게 되고, 눈에 띄니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를 내려선 우리집 옆 골목으로 올라가거나, 세탁소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거기 사는 친구 놈에게 물었지. 누구냐? 먼 친척이란다. 논산에서 통학을 했는데 이번에 아버지랑 같이 있게 돼서 우리 동네로 이사 왔단다. 집을 알아보니 우리집 뜰에서 담 너머로 보이는 창이 희자 방이었다.

대전여상 재학 중. 키가 168cm에 그 학교 교복을 몸에 짝 달라붙게 입고 다니니, 오메! 있음 자체가 환상이었다. 친구를 졸라 세탁소에 불러들이고는 어거지로 소개를 받았다.

친구루 잘 지내잔다. 아니지, 어찌 남녀 사이에 친구가 있을 수 있는가 말이다. 내 사전엔 여자 친구가 없다. 모든 여자는 사랑하기 위해 존재 한다.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다가 오며 날이 일찍 어두워졌다. 집에 들어서며 희자 방을 쳐다보고는 방에 불이 꺼져 있으면 도로 가방 들고 시내로 나갔다. 학교가 있는 선화동으로, 애들이 많은 은행동으로 희자를 찾으러 다니다 들어오곤 했다.

여전히 불이 꺼져 있으면 안절부절, 들락날락 애를 태우고, 불이 켜져 있으면 또 그때부터 창을 바라보며 벼라별 상상을 다 하곤 했다. 뭐? 발가 벗겼냐구? 왜 이래, 순수의 결정체였단 말이다.

 

그럭저럭 빵집에도 몇 번 가고, 버스에서 만나면 옆에 와 앉기도 했다. 맘에도 없이 순진한 척 어벙한 짓도 종종 하고, 희자도 과히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한번은 은행동에 둘이 서 있는데 대신고 다니는 떡때 한 놈이 희자 등을 탁 치며 반가워 하는 것이었다. 눈에 쌍불이 들어 왔는데, 희자는 그 귀한 버스가 왔는데도 탈 생각을 하지 않고 지절대는 것이었다. 화가 나서 혼자 올라 타고 집에 왔지. 그날 밤, 희자 방에 불이 들어 온 것은 통금이 가까워져서 였다. 오메, 까맣게 탄 내 속 좀 보소.

 

겨울 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12월 어느 날, 집 앞 정류장에서 내린 우리 둘은 서로가 물어 보지도 않고 걷기 시작했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거든, 눈이.

또랑을 지나 교양과정부 옆길로, 군인부대 앞으로 해서 문리대 사잇길을 걸었다. 눈은 쌓이고, 우리 둘 사랑도 소복거리고. 고백했지. 너 없인 못 살겠다고. 그러지 말라고. 우린 아직 어리다구. 지랄 어린 게 뭔 상관이람, 이렇게 좋아 죽겠는데. 십년래 젤 많은 눈이었단다.

 

3학년이 되기 전 겨울 방학 땐 청주엘 가끔 갔다. 방죽에서 만나 대륙관광을 타고 신탄진까지 가서 청주 시내버스를 갈아타는 코스였는데, 충북대 교정을 싸돌아다니다 돌아오곤 했다.

한번은 청주 시내를 어딘지도 모르고 돌아다니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분이 우리에게 마구 욕을 하시는 것이었다. 뭔 일여? 알고 봤더니 여관 골목에서 나오고 있었던가 보다. 지랄, 그런 생각은 해 보지도 않았는데.

논산이 집이고 우리 학교 밴드부장인 형재가 말했다.

“넘마! 희자랑 연애하냐? 개 좋아하는 남자들이 모두 논산 주먹여! 조심혀라.”

그런다구 내가 떠냐?

 

가을이 되자 희자는 실습을 한다고 서울로 올라갔다. 가을 내내, 그리고 겨울이 와도 희자 방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나마 시원찮은 공부가 왼통 희자 생각으로 엉망진창으로 변했다. 그리곤 들려오는 소식이, 이제 대전으론 내려오지 않을 것이며 명서도 더 이상 만나기 싫단다. 뭐야, 이거!

 

재수를 하는 내내 희자는 정말로 대전에 내려오지 않았다. 아니 오기야 했겠지만 내겐 일체 연락을 하지 않았다.

복숭아가 제대로 맛이 들어갈 즈음, 희자 친구인 선희를 앞세우고 희자네 시골 집을 찾아갔다. 어디서도 제대로 된 희자 주소를 얻을 수가 없어서였다. 논산군 은진면 방축리. 뙤약볕을 지나 먼지가 풀썩거리는 황톳길을 한참을 가서야 희자네 집이 있었다. 대충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고는 선희를 시켜 겨우 주소쪼가리를 얻어 들고 돌아 왔다.

 

서울 거리를 헤매다, 개통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전철을 타고 송내역까지 오가며 망설이다, 쳐들어 갔다. 지금은 어딘지 기억나지 않는데, 아뭏든 회사 이름이 국민서관이었다. 전화를 했다, 아래에 있으니 잠깐 얼굴이나 보자구. 많이 놀라는 눈치다. 길거리 차양 아래에 음료수 두 병을 놓고 마주 앉았다.

 

대전두, 논산두 다 싫단다. 내게 대한 감정도 이제 좋구 나쁘구가 없단다. 지금 사무실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단다. 서울에서 자리를 잡으며 그 사람 도움을 많이 받았구 참 잘 해 준단다. 시원하고 너른 서울이 좋단다. 서울서 열심히 살고 싶단다. 다시는 대전으로 내려가지 않을 것이란다. 이제 더 이상 만나기도 싫구 연락도 하지 말아 달란다.

알았어.

돌아와 편지를 썼다. 아마 울면서 썼을게다. 나중에 들은 얘기론 희자두 그 편지를 울면서 읽었단다.

 

이듬해 신정연휴 마지막 날, 자정이 넘었는데 누군가 조그맣게 날 불렀다.

"명서야! 명서야!"

금자 누난가? 문을 여니 희자가 서 있었다. 연휴 때 내려 왔다가 올라 간단다. 시험 잘 보라고 말해주러 왔단다. 택시를 타고 대전역으로 갔다. 두 시간을 그리 말없이 있었다. 차 시간이 되어 희자가 갔다.

 

그 해 겨울녘, 동네 포장마차에서 쐬주를 한잔 찌끄리고 있는데 코트 깃을 세운 여자가 들어왔다.

잘 있었어? 오뎅 한 꼬치를 간장을 찍어 가며 잘도 먹는다. 쐬주 한잔 쏟아 붓고는 또 한 꼬치를 다룬다. 무슨 말인가를 할 때 마다 달차근한 오뎅내가 났다. 난 그 오뎅내에 취하고 말았다.

그날 이후 입에서 오뎅내 나는 여잘 찾으러 몇 번이나 그 포장마차를 기웃거렸지만 한 번도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010 - 5802 - 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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