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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나

결혼기념일

2011.05.26 18:07

조회 수: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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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 11월 30일, 화요일 입니다.  은행동에 있는 제일예식장이라는 곳에서 결혼식을 가졌습니다.  신혼여행은 경주 들러 부산 갔다가 대전에 올라와 유성에서 하루 더 묵었습니다.  집사람이 스물다섯, 제가 스물여섯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벌써 만으로 스물여덟 해가 되는군요.

  

집사람을 처음 만난 것은 '77년 여름, 고등학교 동창 셋과 집사람 동창 셋이서 계룡산 동학사에서 미팅을 한 때였습니다.  셋 중에 제일 못 생긴 여자를 제가 맡기로 했는데, 얼굴에는 여드름이 박박하고, 가슴은 보이지도 않고, 손이라야, 팔이라야 뜯어 먹을래 살쩜두 없구, 아무튼 그랬습니다.  저요?  더벅머리에, 몸무게 95Kg에, 쓰리빤지 고무신인지 질질 끌고 다녔을 겝니다.

  

산에서 놀긴 잘 놀았는데, 한놈이 막판에 술에 뻗는 바람에 박정자 삼거리까지 걸어오고, 대전에 나와서는 그래두 재수허고 대학 들어와 첫 미팅인데, 없는 돈 털어 大高 오거리 쨩께집에서 지지배들 짜장면 한 그릇씩 퍼 멕이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날 저녁엔 제가 뻗었습니다.  '아! 나는 왜 맨날 저런 여자만 걸리는 거엿!'  친구 놈들두 투덜투덜, 궁시렁 궁시렁···.  말로는 그랬어두, 어느 땐 두 패가, 또 어떤 땐 세 패 모두가 그 뒤로도 두세 번 만난 것 같습니다.  모르죠 한 패씩 만났는지도.  저두 애들 몰래 몇 번 만났었거든요.  그 놈들이 물어 보면, 괜히 딴청 부리고 그랬죠.

 

그 당시는 군 부대로 집체교육을 갔는데, 우리학교는 조치원에 있는 부대로 갔습니다.  떠나기 전에, 정말 군대라도 가는 것처럼 갖은 분위기를 다 잡고 전화해서 저녁을 얻어 먹었는데, 아뿔싸, 몸에 피부병이 있다고 저는 귀향조치 됐습니다.  돌아오기로 돼 있는 날 저녁에 만나기로 했는데.   암튼, 그 날 저녁 때 만났습니다.  머리는 빡빡이구, 고무신 꿰차구.  둘이서 다방을 나와 목척교 쪽으로 걸어가는데, 이 여자가 점점 떨어져 가는 겁니다.  이거 왜 이래?  돌아보니, 마주 오는 이들이 저 한번 보고, 제 고무신 한번 보고, 여자 한번 보고, '푸훗!'  지랄!   이래저래, 저는 수원이 집인 여자에게 애 태우느라, 2, 3학년 때는 또 다른 여자에게 목을 매느라 연락도 하지 않았고 까맣게 잊었습니다.

  

군대 간다고 휴학계 낸 '80년 초여름, 입대를 한 달 정도 앞두고 친구들과 충북 옥천 청산으로 낚시를 갔습니다.  집으루 돌아오는 길에, 처음 탄 버스에서 낚싯대 때문에 내리고는 다음 차에 올랐는데, 어럽쇼!  그 여자가 타고 있는 겁니다.  그 여자 집은 우리 집과 정반대 방향이었는데.  우리 집은 문화동, 그 여자 집은 삼성동. 몇 달 전에 문화동으로 이사 왔답니다.  그것두 우리 동네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천근으루.  우리 동네는 과례거든요.

군대 가기 전날까지 거의 매일 만났습니다.  하루는 어찌 좀 해볼려구, 오후 늦게 만나 흑석리까지는 잘 몰고 들어갔는데, 용케 빠져 나오더군요.  화~  그 덕분에 저,  진짜 아다라시 상태루 입대했습니다.  그놈의 通禁이 한 열시 정도에 시작이 됐어야 하는데.

  

지지리도 못나게 보낸 군대에 있을 때도, 편지도 보내 주고, 들려도 주고, 올 때마다 이마며 볼의 여드름이 하나씩 줄어, 크리스마스 전날 왔을 때는 다른 이들이 미인이라구 맘에 없는 말들두 제법 했습니다.  그 놈의 여드름을 그 때까지 달고 살고 있더라구요.  아마 사춘기가 늦었나 봅니다.

  

집에 돌아오고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청하니, 그 집에서 절대 안 된다고 반대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제 형편이 원래 좀 그렇거든요.  하루는 그 집 앞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더니, 남동생 둘이 지들 아버지 특명을 받고 절 잡으러 오더군요.  산으로 도망가고, 뒤 따라와 헤어지자고 울고. 

이쯤이면 여성 동지들이 대강 아시다시피 그 여잔 이미 내 껍니다.  지들이 워쩔껴!  물러!  가져 가!  낸 손해 볼 꺼 읎어!

한 여름, 엄니가 사 주신 수박 두 덩이 들고 그 집에 가서, 키득대며 딸 달라고 다시 외쳤습니다.  그 중 한 덩이는 가다가 깨뜨렸습니다.

 

여자 아버지, 딸에게 :  너!  후회하지 마라!

그 아버지 딸 : 예.

 

기실, 낼이 결혼기념일인데, 이리 있다 보니 같이 축하하자고 할 수가 없어 지껄여 본 소립니다.  전화하면 대번, "썩을 놈!  지랄하구 있네!" 

그럴건데...지, 自意識입니다.

  

부부는 전생에 웬수 진 이들이 만난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부부는 다음 生에두 다시 부부로 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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